時事論壇/産業·生産·資原

창업강국 핀란드와 비교하니 한국 성적은 낙제점

바람아님 2016. 9. 18. 00:10
매일경제 2016.09.17. 15:48 

창업기업 증가했지만 3년 생존율 OECD 꼴찌 못 벗어나
핀란드 헬싱키 시내에 위치한 디자인 디스트릭트에서 가장 큰 숍인 ‘사무이’의 설립자 사무시 코스키는 국민 브랜드 ‘마리메코’ 디자이너 출신이다. 사무이는 2011년 시작한 신생 브랜드지만 유럽은 물론 이미 북미·아시아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사무이의 판매본부장을 맡고 있는 수비엘리나 엔쿠비스트 씨는 “마리메코를 비롯해 기성 유명 브랜드 출신 디자이너가 많다”면서 “효율성을 위해 각국에 직접 사무실을 내지 않고 유통회사를 통해 편집숍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50개국 이상에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 신진 브랜드 사무이(Samuji)의 헬싱키 매장에서 손님들이 옷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정의현 기자]
핀란드 신진 브랜드 사무이(Samuji)의 헬싱키 매장에서 손님들이 옷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정의현 기자]

사무이는 한국에서도 지난 5월 올리 렌 핀란드 고용경제부 장관의 방한에 맞춰 롯데백화점에서 브랜드 행사를 가졌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핀란드 정부가 자국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2005년부터 조성한 거리다. 현재는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200여개의 숍이 자리잡아 헬싱키 대표 관광코스로도 자리잡았다.


핀란드는 지난 2013년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력산업의 쇠퇴를 겪었다. 이 때문에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하는 등 남유럽과 함께 가장 부진한 경제성적표를 받아왔다. 하지만 마이너스 폭이 빠르게 줄어들다가 지난해 플러스 성장(0.2%) 전환에 성공했다. 2016년 성장률도 1% 수준(OECD 예측치 기준)으로 전망된다. 회복세는 아직 미약하지만 한 때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기업의 몰락을 겪고도 버틴 핀란드의 힘으로 청년창업의 힘이 주목받고 있다.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나 클래시오브클랜의 ‘슈퍼셀’ 등 이름난 핀란드 IT벤처기업이 아니더라도 핀란드 현지에는 ‘스타트업 사우나’로 대표되는 학생 주도 창업이 활성화 돼있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융합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핀란드 3대 국립대의 공학·디자인·경영학 학제를 융합해 2010년 출범한 알토대의 창업 프로그램으로 핀란드의 체계적인 창업양성 문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전국에 사우나가 300만개에 달할 정도로 사우나 사랑이 지극한 핀란드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이름이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있는 또 다른 가게인 ‘리케’ 소속 남성복 브랜드 ‘FRENN‘의 대표 디자이너인 자르코 칼리오 씨도 청년 창업가다. 그는 “리케에서는 어느 디자이너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고 원하는 방식으로 진열할 수 있어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안성마춤”이라며 “얼마전 가을 신상품이 파리 패션위크에 갔다”고 소개했다.


(왼쪽부터)신진 디자이너 편집숍 리케(liike)에서 일하는 시니 인버그, 마르주 우틸라, 자르코 칼리오 씨가 각자 자신의 대표 상품을 보이며 웃고있다. [사진 = 정의현 기자]
(왼쪽부터)신진 디자이너 편집숍 리케(liike)에서 일하는 시니 인버그, 마르주 우틸라, 자르코 칼리오 씨가 각자 자신의 대표 상품을 보이며 웃고있다. [사진 = 정의현 기자]
창업 모범국가로 떠오른 핀란드 헬싱키 시내 [사진 = 정의현 기자]
창업 모범국가로 떠오른 핀란드 헬싱키 시내 [사진 = 정의현 기자]
노키아의 나라에서 모범 창업국가로 재빠르게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핀란드는 지속적으로 확대된 창업 활성화 정책에도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편성한 201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 예산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2조3752억원 규모에 달한다.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창업기업 수는 2013년 7만 5574개에서 2015년 9만 3768개로 2년만에 24%나 늘었지만 창업기업 3년 생존율은 지난해 38.2%로 수년째 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대학 내 창업기업 747개 중 매출액이 제로인 곳은 전체 20%에 가까운 140곳에 달한다. 교비 지원금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만 받아간 학내 창업기업도 101개에 달한다. 대기업 취직을 위해 특별한 스펙이 필요한 학생들 수요와 취업률 증가를 통해 이미지 제고를 노리는 대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 생존률과 성장성을 높일 수 있는 창업 보육 기관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며 “보육 대상자를 선정할 때 아이디어, 현재 시장 상황 및 가능성 등 명확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선발하고 설정된 보육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 서 모씨(24)도 창업 전 학교에서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창업실습 강의에서 ‘건수’위주의 정책 폐해를 뼈저리게 느꼈다. 서 씨는 “창업 경험을 해보라면서 한학기 동안 팀 당 총 150만원 지원에 그것도 건당 10만원 넘는 지출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행정적으로 영수증 처리과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느려서 지출 후 두 달 넘어서야 지급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까다로운 제약조건에 서 씨를 비롯해 대다수의 수강생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티셔츠·꽃·화장품 등 간단한 소비재를 도매시장에서 사다가 파는 유통업종이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성과를 보려는 현재의 관(官) 주도 정책으로는 의미있는 창업 활성화를 이룰 수 없다고 본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1970~8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과 벤처 생태계 조성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정부는 법적·세제적 지원을 통해 민간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스타트업에 대해 자발적으로 활발한 M&A가 일어나도록 생태계를 조성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탄생한 IT스타트업인 슈퍼셀도 2013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매각됐다가 현재는 중국 텐센트에 인수됐다.


근본적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충고다. 위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벤처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선진국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조차 100년의 전통이 넘는 명문대를 통합해 창업에 특화된 새로운 콘셉트의 대학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핀란드의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수공예 등 디자인 교육과 코딩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교육이 포함돼있다. 2011년 노키아에서 퇴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브릿지 인큐베이터를 통해 노키아 출신 엔지니어들이 1000여개의 벤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창의적·실무적 교육시스템이 길러진 잠재력이 작용했다.


서울대기술지주 대표이사를 맡고있는 박종래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지원을 늘려도 직접 투자하는 입장의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위험회피 성향이 여전히 크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대학생이 이른바 ‘스펙용 창업’을 하는 것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며 “우리도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