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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일본 전문가 그룹 ‘재팬 핸즈’ 길러 자국 이익 관철

바람아님 2016. 9. 19. 00:10
[중앙일보] 입력 2016.09.18 02:36

[중앙SUNDAY·與時齋 공동기획] 세계가 묻고 세계가 답하다
우리 외교에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같은 주요 이슈를 놓고 국민은 불안하기만 한데 행정부와 청와대, 국회는 손발이 맞지 않고 여야도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

나라의 앞날이 달린 이슈에 우리가 외교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외교 전략을 전문화하고, 행정부 중심의 정통 외교에 더해 공공·민간 외교 등 다원화된 외교를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마트한 전략 외교, 스펙트럼을 넓히는 다각화 외교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해외의 외교에서 해법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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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교의 대표적 얼굴은 공공외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본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공개발원조(ODA)와 문화 교류, 인재 양성 등 협력사업을 통한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일본은 전범 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대외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

그런 일본의 공공외교가 이룬 결실 중 하나가 미국 워싱턴에서 이른바 ‘재팬 핸즈’로 불리는 일본 지역 전문가 그룹이다. 문부과학성 산하 ‘국제교류기금’을 비롯해 각종 단체의 장학금을 지원받아 일본 연구자로 성장한 이들은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미국의 일본정책,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일파 혹은 일본통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재팬 체어를 총괄하고 있는 마이클 그린(사진)의 경우를 보자. CSIS는 공화당 계열의 싱크탱크로 이곳의 재팬 체어는 미·일 동맹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책제안서에 관여하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린은 1983년 문부성이 주관한 ‘어학지도 등을 담당하는 외국청년 유치사업(JET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연구자가 됐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그린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일본·한반도 담당 부장, 아시아 상급 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 밖에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 부장관,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 등이 대표적인 재팬 핸즈로 통한다.구체적으로 미·일 관계에 이들이 영향을 끼친 사례로는 95년 동아시아 전략보고서를 들 수 있다. 조셉 나이 당시 국방차관보의 이름을 따 ‘나이 리포트’로 통칭되는 이 보고서는 냉전 후 미·일 동맹 강화와 이에 기반한 아시아·태평양 전략구상을 제안해 이후 97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바탕이 됐고 냉전 후 미·일 관계의 기본 방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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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재 양성과 문화 교류를 통해 미래의 지일파 미국인을 성장시키는 실효를 거둔 일본은 정부 산하 국제교류기금에서 미·일 센터에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이름을 따 91년 설치한 ‘아베 펠로십’을 비롯해 미·일 청년지도자 교류사업, 일본계 미국인 리더 교류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선 미국 내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싱크탱크들을 주요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브루킹스연구소·카네기재단에 일본 전문가 포스트를 설치하고 미·일 정책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A급 전범으로 기소됐던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일본재단 역시 미국 내 ‘재팬 핸즈’ 양성의 중요한 재원이 되고 있다. 미·일협회 연합(NAJAS)을 통한 미·일 이해 강화 사업, ‘미·일 평의회’ 등 미국 아시아계 지방의원의 일본 이해 촉진사업, 미국사회과학연구평의회(SSRC) 같은 신진 전문가의 미국 파견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황세희 여시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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