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9-21 03:00:00
노태우, 북방외교에 취하고 YS는 美의 영변폭격 막았다
진보건 보수대통령이건 ‘북핵=김씨왕조 명줄’ 잊은채
햇볕에 속고, 중국을 믿고… 북핵 머리에 이고 사는 불안
당당히 맞서 이겨내는 수밖에
고통스러운 후회의 시간이다. 우리는 왜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을까. 길을 잃었을 때는 높은 데 올라 먼 곳을 살펴봐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 우리 쪽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놔두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을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비핵화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비핵화 선언으로 북한의 핵 사찰 거부 명분이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년 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했을 때 비핵화 선언의 일방성이 가진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핵화 선언에 외교안보수석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어느 각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노태우의 회고록에 나온다. 모두 북방외교의 성과에 취해 북방외교가 초래한 북한의 고립이 더욱 핵에 집착하게 한 사실을 무시했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가 없었고 남한에는 핵무기가 있었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가 있고 남한은 없다. 기막힌 역전이다.
북한의 NPT 탈퇴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한 달 후 일어났다. 김영삼은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는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영변 원자로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을 때 반대했다. 이후 제네바 합의의 실패, 6자회담의 실패, 유엔 안보리 제재의 실패를 돌아보면 북핵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협상도 제재도 아니고 폭격이었다. 한국이 희생을 감수할 마음이 없음이 분명해졌을 때 그 방법은 메뉴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의혹만으로 공격했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WMD 실험을 해도 공격하지 않는다. 극동은 중동과 달리 미국에서 심리적으로 멀다. 한국이 하자고 해도 주저할 판에 한국이 하지 말자는데 나설 이유가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핵무기의 문제를 전력공급의 문제로 치환한 기만적인 것으로, 실패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제네바 합의를 믿고 감상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렸다. 김대중이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등 뒤에서 북핵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2006년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김영삼은 “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해 포용정책을 펴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난했고 김대중은 “북한 핵실험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둘 다 틀렸다.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했을 것이고, 공화당 부시 대신 민주당 고어나 케리가 당선됐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 주리라는 헛된 기대에 9년 세월을 허비하며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핵무기는 김씨 세습정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의 대통령들은 김씨 세습정권의 존립을 보장할 것은 핵무기 외에는 없다는 단순 명백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대사관 전문(電文)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2008년 미국대사와의 대화에서 “돌아보면 1994년 미국의 폭격을 허락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 1994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미군의 폭격을 허락할까. 웬만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었는데 웬만한 이상의 노력을 할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도 국민도 돼 있지 않다. 우리는 1994년 폭격을 반대했을 때 언젠가 다가올 북핵과의 불안한 공존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북핵이 현실화했다. 우리 앞에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머리 위에 둔 초(超)불안의 시대가 놓여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스스로 선택한 불안이다. 그 불안을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으로 섣불리 해소하려 하지 말자. 북이 핵을 가진 이제 와서 예방폭격을 하자는 식이어서도 안 되고, 굴종적으로 평화를 사자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 핵무기의 주 용도는 억지력이다. 북한도 핵무기를 실제 써서 스스로를 위기로 몰고 갈 이유가 없다. 김정은이 제 목숨 하나는 귀하게 여길 정도로 정상 상태이길 기도하되 당당히 맞서 북한 세습체제에 균열이 초래될 때까지 더 강한 스트레스를 가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진보건 보수대통령이건 ‘북핵=김씨왕조 명줄’ 잊은채
햇볕에 속고, 중국을 믿고… 북핵 머리에 이고 사는 불안
당당히 맞서 이겨내는 수밖에
송평인 논설위원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 우리 쪽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놔두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을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비핵화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비핵화 선언으로 북한의 핵 사찰 거부 명분이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년 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했을 때 비핵화 선언의 일방성이 가진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핵화 선언에 외교안보수석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어느 각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노태우의 회고록에 나온다. 모두 북방외교의 성과에 취해 북방외교가 초래한 북한의 고립이 더욱 핵에 집착하게 한 사실을 무시했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가 없었고 남한에는 핵무기가 있었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가 있고 남한은 없다. 기막힌 역전이다.
북한의 NPT 탈퇴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한 달 후 일어났다. 김영삼은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는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영변 원자로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을 때 반대했다. 이후 제네바 합의의 실패, 6자회담의 실패, 유엔 안보리 제재의 실패를 돌아보면 북핵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협상도 제재도 아니고 폭격이었다. 한국이 희생을 감수할 마음이 없음이 분명해졌을 때 그 방법은 메뉴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의혹만으로 공격했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WMD 실험을 해도 공격하지 않는다. 극동은 중동과 달리 미국에서 심리적으로 멀다. 한국이 하자고 해도 주저할 판에 한국이 하지 말자는데 나설 이유가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핵무기의 문제를 전력공급의 문제로 치환한 기만적인 것으로, 실패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제네바 합의를 믿고 감상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렸다. 김대중이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등 뒤에서 북핵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2006년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김영삼은 “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해 포용정책을 펴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난했고 김대중은 “북한 핵실험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둘 다 틀렸다.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했을 것이고, 공화당 부시 대신 민주당 고어나 케리가 당선됐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 주리라는 헛된 기대에 9년 세월을 허비하며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핵무기는 김씨 세습정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의 대통령들은 김씨 세습정권의 존립을 보장할 것은 핵무기 외에는 없다는 단순 명백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대사관 전문(電文)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2008년 미국대사와의 대화에서 “돌아보면 1994년 미국의 폭격을 허락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 1994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미군의 폭격을 허락할까. 웬만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었는데 웬만한 이상의 노력을 할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도 국민도 돼 있지 않다. 우리는 1994년 폭격을 반대했을 때 언젠가 다가올 북핵과의 불안한 공존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북핵이 현실화했다. 우리 앞에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머리 위에 둔 초(超)불안의 시대가 놓여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스스로 선택한 불안이다. 그 불안을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으로 섣불리 해소하려 하지 말자. 북이 핵을 가진 이제 와서 예방폭격을 하자는 식이어서도 안 되고, 굴종적으로 평화를 사자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 핵무기의 주 용도는 억지력이다. 북한도 핵무기를 실제 써서 스스로를 위기로 몰고 갈 이유가 없다. 김정은이 제 목숨 하나는 귀하게 여길 정도로 정상 상태이길 기도하되 당당히 맞서 북한 세습체제에 균열이 초래될 때까지 더 강한 스트레스를 가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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