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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 불공평

바람아님 2013. 7. 29. 11:10

(출처-조선일보 2009.05.11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보기 드문 경제학자이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2004)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는 그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이기적 인간이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돕는 이타적 인간보다 더 큰 물질적 이득을 얻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타심이라는 심성이 남아 있는가를 연구하는 진화경제학자이다.

진화경제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실험하기 위한 도구로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을 자주 사용한다. 연구자가 실험에 참여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만원을 주고 나눠 가지라고 한다. 그 사람이 제시한 금액을 다른 한 사람이 받아들이면 둘은 만원을 나눠 갖게 되고, 만일 거부하면 한 푼도 갖지 못한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당연히 크기에 상관없이 배당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다못해 단돈 100원을 준다 해도 받는 게 거부하는 것보다 이익이다.

하지만 1982년 독일 쾰른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뜻밖에도 배당액이 전체 금액의 30%가 넘지 않으면 제안을 거부했다. 진화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결과를 인간의 이타성과 보복 성향으로 해석한다. 선에는 선으로 대하지만, 악에는 자신이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악으로 대응하는 성향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도를 닦던 스님마저 자신에게만 찬밥을 준다며 사찰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불공평에 대한 응징은 우리 인간만의 속성이 아니다. 《침팬지 폴리틱스》의 저자이자 미국 에모리대학 영장류연구소 소장인 프란스 드발(Frans de Waal)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흰목꼬리말이원숭이들에게 돌멩이를 가져오면 그 대가로 오이를 교환해주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규칙을 바꿔 한 원숭이에게만 맛있는 포도를 주기 시작하자 40%의 원숭이들이 교환행동을 중단했고, 심지어 돌멩이를 가져오지도 않은 원숭이에게 포도를 주기 시작하자 무려 80%가 자기들의 돌멩이마저 집어던졌다.

최근에는 개들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 협조를 거부하고 고개를 돌린다는 사실이 오스트리아 빈대학 연구진에 의해 관찰되었다. 이른바 '김무성 카드'를 뿌리치는 박근혜한나라당 대표의 행동을 지켜보며 나는 우선 당이 내민 화해의 손길이 공평한가 따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