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16-09-24 23:05:00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일본은 극도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그보다 앞선 8월 3일 중거리 미사일,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9월 5일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일본을 향해 연달아 발사했다. 그 결과 일본 내에서 ‘핵무장론’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일련의 사태로 일본 MD(미사일방어) 체계의 물리적 한계와 불안전성이 드러나면서 요격이 아닌 ‘선제타격’이 답이라는 결론도 도출됐지만, 이는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핵무장이 더욱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군사·외교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와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핵무장론자로는 아리마 데쓰오, 요시자와 마사히로, 다모가미 도시오, 히다카 요시키, 나카니시 데루마사 등이 있다.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경우 국제사회가 이를 제재할 만한 명분도 마땅치 않다. 이미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를 갖춘 상황에서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에게만 핵보유 금지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핵을 갖더라도 북한에 대한 억지력으로만 사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국제사회 전반에 형성돼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되긴 하나, 중국은 남중국해 등지에서 무리한 세력 팽창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있고,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 강제병합 등으로 유럽 국가들로부터 제재를 받는 상황이라 이들의 발언은 그리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국제사회, 일본 핵보유 제재 명분 없어
또한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더라도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할 이유가 없다. 현재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국이지만, 핵무장 후 핵우산 제공국으로 위치를 전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2012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국의 쇠퇴와 미국 핵우산의 불완전성을 지적해 일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해 안보를 보장받아온 대만, 터키 등이 미국 핵우산을 신뢰하지 못하고 결국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거나 다른 핵국가에 의존하는 방안을 구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이 핵무기를 갖추면 지금까지 핵우산 제공국으로서 미국이 해온 소임을 일본이 분담해 맡으리라는 게 일부 군사전문가의 관측이기도 하다. 북한과 파키스탄 등 소국들이 핵무기 개발 시 부딪치게 되는 두 가지 난관(NPT 탈퇴 문제, 국제사회 반대와 제재)을 무난하게 돌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핵무기 개발은 분명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일본은 언제든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해왔다. 현재 추정되는 플루토늄 비축량은 44t으로 이는 핵폭탄 5500발을 제조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기술 측면에서만 보면 일본은 이미 핵보유국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미사일, 항공기, 이지스함, 잠수함 등 핵무기 운반체계도 확실히 정비해놓았기에 핵보유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건 시간문제다.
그동안 일본의 핵보유를 허용하지 않던 미국도 서서히 방침을 바꾸는 분위기다. 이는 여러 유명 인사의 연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현실주의 전략의 대가 헨리 키신저 박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 일본 역시 반드시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핵전략가로 명성이 높은 제임스 슐레진저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또한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건 일본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지 미국이 간섭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현재 미국 내에서는 일본의 핵무장이야말로 북한을 억지하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마치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하던 기간에 중국과 소련을 통해 공산주의가 팽창하는 것을 막고자 일본을 재군비, 재무장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일본이 끝내 핵무장을 단행한다면 우리나라도 핵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주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제외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시작한다 해도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비난할 수 없다. 한국이 처한 절박하고 처절한 상황 앞에서 국제사회는 경제제재 같은 조치를 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세라면 결국 동북아시아 지역은 각자 핵을 가짐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억지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게 된다.
북한은 9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5차 핵실험을 했다. 8월 27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위성사진.
[사진 출처 · 38노스]
중국 손에 달린 북한 ‘레짐 체인지’
물론 이는 중국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결코 아니다.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을 막는 게 중국 측 목표라면 북한의 핵실험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한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들 수 있다. 중국은 북한 내부에 진을 치고 있는 중국 유학파 요원들과 그 위에 존재하는 전문특수부대를 파견해 김정은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친(親)중국인 김정일의 장남 정남을 수장으로 내세워 허수아비 정권을 다시 세운다는 시나리오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중국은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일본과 한국이 핵무기 개발에 시동을 걸면 중국은 즉각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를 강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핵개발 움직임이 더디게 흘러간다면 중국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할 때까지 특별한 제재 없이 지금 같은 노선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까지 추진한다면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 시나리오는 더욱 현실성을 띠게 될 테고, 이 시점이 중국에게는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이 북한에 개입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이 중국 측의 레짐 체인지 공작에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아주 조용히 작전을 전개해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중국과 김정은의 대립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북한 내부는 일종의 준내전사태에 돌입해 통제 불가능한 상황까지 올 수 있다. 이 경우 한미연합사가 북한에 들어가 ‘작전계획 5029’(쿠데타 등으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미연합사가 북한에 들어가 펼치는 전격작전)를 전개할 테고, 현장에서 중국과 한미연합사가 어떻게 대치할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유혈충돌이 일어날지, 아니면 대타협이 도출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도 일종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 무역을 통해 연 3000억 달러(약 334조7000억 원) 이상 흑자를 내고 있다. 만약 중국이 레짐 체인지를 노리고 북한에 섣불리 개입한다면 미·중 간 유혈충돌이 생기고 이것이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줘 3년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리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렇기에 중국의 딜레마는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북핵 위기가 지속돼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시도할 개연성이 크다. 현재로선 북한의 정권교체 주도권은 중국에게 있다.
이규석 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장 ja4514@naver.com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05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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