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10-04 03:00:00
민동용 정치부 차장
몇 잔의 술이 돈 뒤에 그가 약간은 진지하게 “5년을 살면서 한국이 정말로 고쳤으면 하는 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정치나 경제 이야기를 하려나 했는데 뜻밖에도 버스였다. “버스가 너무 난폭 운전을 한다. 5년을 살았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의외였다. 서울 시내버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때 중앙전용차로제 실시, 노선 재정리, 시 예산 지원 등으로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생각했다. 버스 운전사가 선망의 일자리가 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에게는 여전히 수준에 못 미치는 서비스였다. 탄 사람이 의자에 앉든지 손잡이를 잡든지 해야 비로소 출발하던 예전 교토의 버스를 생각하면 이 친구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6년 전 다른 일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때까지 7, 8년을 서울에서 살았다는 그는 “서울에 사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런데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인도로 다니는 오토바이”라고 했다. 경찰이 그걸 보면서도 제지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서글펐다고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였다. 버스가 어떻게 운행해야 하며, 오토바이가 인도에서 심지어는 횡단보도에서도 달리면 안 된다는 것은 여러 법과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찰은, 버스 운전사는, 오토바이 배달원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으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를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인간이 하는 일에 더 온정적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제도보다는 인간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해야 할까.
정치권에서는 물밑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대통령제의 유효가 이제 만기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력과 여론을 모으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인간도 70(세)이면 신체가 한계에 이른다고 본다. 하물며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내년이면 70년이 되는 대통령제는 어떻겠느냐. 바꿀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개헌론자들은 1987년 이후 30년간 성공한 대통령이 누가 있었으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느냐고 묻는다. 국회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서부터 벌어진 일련의 소모적 소동들도 대통령제가 낳은 폐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사람보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개헌 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국회를 이 모양으로 만든 의원들이 내각까지 관장하도록 한다는 논리에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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