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가 왜 낙태를 선택하지 않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는지는 잘 모른다. 영국에서 낙태는 불법이 아니다. 태아가 24주가 될 때까지는 조건 없이 낙태가 가능하다. 만일 임신한 여성의 건강에 상당한 위험이 있거나 태아가 기형인 경우 그 이후에도 가능하다. 공공의료보험으로 비용을 지급한다. 그러나 T는 진학을 포기하고 아기를 낳는 쪽을 선택했다.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이었지만 머지않아 아이 아빠는 자기 부모에게 돌아갔다. 어린 엄마는 아기와 남았다.
T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은 충격을 받았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린 엄마와 그 아기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 나이에 엄마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또래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과 앞날의 여러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저 나이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거나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등의 비난을 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는 여러 가지 사회복지 혜택을 받았고 주거 지원도 받게 되었다. T의 가족은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딸과 손자를 보살핀다. 그러니 T는 운이 상당히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겪은 열일곱 소녀를 두고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T가 한국 소녀라고 한번 상상해 보라. 한국의 보통 가정의 딸이 만 열여섯 살에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이다. 이 소녀에게 또 그 가족에게 어떤 사회적 비난이 쏟아질지, 얼마나 힘들지,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아이를 돌보며 나름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가족이라면, 아니 그냥 타인이라고 해도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을 선뜻 지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소녀라면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에서 낙태는 범죄다. 낙태를 한 본인은 물론 시술을 한 의사들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태아의 부 또는 모가 유전적 기타 질병이 있거나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단순히 ‘원치 않는 임신’은 위의 예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T가 한국인이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자 한다면 아이를 낳아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거나 입양을 보내야 한다. 아니면 형사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