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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결코 쉽지 않은 선택

바람아님 2016. 10. 15. 09:42
[중앙일보] 입력 2016.10.1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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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가끔 집에 놀러 오던 영국인 여자아이 T는 만 열여섯에 아이를 가져 만 열일곱에 엄마가 되었다. T를 처음 본 것은 열네 살 때였는데, 가슴팍에 “오늘 생일이에요!(Birthday Girl!)”라고 적힌 어른 손바닥만 한 핑크색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가정환경이 나쁜 비행청소년만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은 그저 남자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성교육은 받았으되 실제로는 무지했던, 밝고 상냥하고 한국에 가보고 싶고 좋은 일을 하고도 싶지만 사실은 제복을 입고 싶어서 경찰이 되고 싶다던 연갈색 머리의 소녀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T가 왜 낙태를 선택하지 않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는지는 잘 모른다. 영국에서 낙태는 불법이 아니다. 태아가 24주가 될 때까지는 조건 없이 낙태가 가능하다. 만일 임신한 여성의 건강에 상당한 위험이 있거나 태아가 기형인 경우 그 이후에도 가능하다. 공공의료보험으로 비용을 지급한다. 그러나 T는 진학을 포기하고 아기를 낳는 쪽을 선택했다.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이었지만 머지않아 아이 아빠는 자기 부모에게 돌아갔다. 어린 엄마는 아기와 남았다.

T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은 충격을 받았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린 엄마와 그 아기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 나이에 엄마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또래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과 앞날의 여러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저 나이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거나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등의 비난을 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는 여러 가지 사회복지 혜택을 받았고 주거 지원도 받게 되었다. T의 가족은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딸과 손자를 보살핀다. 그러니 T는 운이 상당히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겪은 열일곱 소녀를 두고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T가 한국 소녀라고 한번 상상해 보라. 한국의 보통 가정의 딸이 만 열여섯 살에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이다. 이 소녀에게 또 그 가족에게 어떤 사회적 비난이 쏟아질지, 얼마나 힘들지,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아이를 돌보며 나름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가족이라면, 아니 그냥 타인이라고 해도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을 선뜻 지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소녀라면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에서 낙태는 범죄다. 낙태를 한 본인은 물론 시술을 한 의사들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태아의 부 또는 모가 유전적 기타 질병이 있거나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단순히 ‘원치 않는 임신’은 위의 예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T가 한국인이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자 한다면 아이를 낳아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거나 입양을 보내야 한다. 아니면 형사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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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낙태를 시술한 의사를 더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공고가 있었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에 반발해 낙태 시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낙태는 더욱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돈이 더 들어갈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위험과 부담은 여성의 몫인 것이 현실이다.

나는 태아가 소중한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 몇몇 순간에 태아의 생명권이 전적으로 우선해야 한다고는 선뜻 말을 못하겠다. 한국 사회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미혼모 등을 사회가 일반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치 못해 또는 용감하게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나 그 태어난 아이 본인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한 낙인을 찍고 모진 대우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낙태와 관련해 벌어지는 논의들은 위 두 가지 권리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여건이 달라진다면 선택의 부담과 고민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 바라는 것은 차라리 이런 것이다. 낳아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위험하지 않은 수단을 보장해 주는 것. 죄책감이나 도덕심을 강조하거나 처벌을 가지고 위협해 봐야 그 때문에 선뜻 아이를 낳기에는 한국 사회의 여건은 심하게 미흡하다. 기혼여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낙태 금지를 출산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는 데 이르러서는 할 말이 없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인구가 많은 것이지 단순히 머릿수가 많은 게 아니지 않겠는가.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