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5년 왕비인 노국공주를 잃은 고려 공민왕은 깊은 슬픔에 잠겨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던 개혁정치 대신 불교에 집착한다. 공민왕의 지나친 불교 의식에 관료들은 비난을 쏟아냈지만, 공민왕은 한술 더 떠 '변조'(신돈의 불명)를 불러들여 그를 사부로 삼고 정사를 맡긴다.
공민왕이 변조에게 정사를 맡긴 것은 그가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공민왕의 변조 등용 이유를 '욕심이 적고 미천한 출신인 데다 홀연 단신 이어서 누구의 눈치를 살피거나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막대한 권력을 움켜쥐게 된 변조는 개각을 단행해 관료들을 유배, 좌천시키고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최영마저 조정에서 쫒아낸다. 그들의 빈 자리는 자연스럽게 변조가 등용한 인물들로 채워진다.
변조의 권세는 더욱 커져 집권 석달 만에 공민왕이 꺼려하는 수많은 대신들을 축출하고 이름도 변조에서 신돈으로 바꿨다. 변조의 악행을 보다 못한 유생출신 이존오가 공민왕에게 신돈의 관직을 빼앗고 절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아 지방으로 좌천된다. 왕은 공민왕이었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것은 신돈이었다.
그로부터 651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이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초유의 위기상황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린시절 멘토 역할을 해 온 최태민씨와 그의 딸인 최순실씨와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고한다.
일반인인 최씨가 국가안보, 외교, 경제, 심지어 인사 등 국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져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 밤의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승려를 거쳐 목사(한국교회언론회는 최태민씨에게 목사 호칭을 붙이지 말라고 주장한다)로까지 불렸던 최태민씨와 그 후계자로 알려진 최씨로 인해 박 대통령이 종교적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씨가 박 대통령의 단순 측근이 아닌, 주술적인 멘토란 얘기까지 들린다"고 주장했다.
다시 공민왕과 신돈 얘기로 돌아가보자. 평소 여자를 밝히고 뇌물받기를 일삼던 신돈은 공민왕의 신임을 잃게 된다. 종국에는 역심까지 품다 유배를 떠나 이틀 만에 죽음을 맞았다. 뒤늦게 나마 상황을 직시한 공민왕은 신돈의 권력을 거둬들이, 관계를 단절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사과와, 독일로 도피한 최씨의 언론인터뷰는 그런 추정을 가능케한다. 이젠 박 대통령 스스로 이런 상황을 정리해야한다. 더 이상 국가를 위기와 혼돈으로 몰고가서는 안된다. 대통령답게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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