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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우지희]기호를 찾으면 인생 즐기는 길 보여

바람아님 2016. 10. 28. 00:38

동아일보 2016-10-27 03:00:00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커피, 담배, 술 등 이른바 기호식품이라고는 하나도 즐기지 않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러던 그가 최근 선물 받은 귀한 커피가 있는데 그걸 핑계 삼아 이참에 평생 안 마시던 커피를 한번 시작해볼까 한다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자타 공인 커피광으로, 하루에 대여섯 잔은 거뜬하게 마시고, 커피 잘 내리는 집에서 한잔을 마시기 위해 거리를 막론하고 꼭 방문해 직접 확인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커피를 즐기는 동안 부작용으로 위염과 식도염이 생기고 말았고 그로 인한 고생도 컸던 터라, 친구에게 선뜻 좋은 시도라고 말하는 대신 생전 안 마시던 걸 굳이 시작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네가 그걸 마시는 동안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는 게 부러워서”라고 대답했다.

 사실이다. 일이 힘들 때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나 심지어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즐겁다. 오죽 커피를 좋아했으면 그 모습을 본 지인이 평소 마시지도 않던 걸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까.

 나의 첫 커피는 어린 시절 나 못지않던 ‘커피광’ 아빠의 이른바 ‘다방 커피’를 타면서였는데, ‘둘, 둘, 셋’이라는 커피 공식을 외우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커피를 탄 뒤 아빠에게 드리기 전에 꼭 커피가 맛있게 되었나 간을 봤다. 그렇게 맛보기 한 스푼으로 입문한 것이 지금은 기호식품을 넘어 생명수 비슷한 것이 되었다. 정말로 그 시커먼 물을 마시고 있노라면 세상만사를 다 잊고 목으로 넘어가는 뜨끈한 행복감에 젖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즐기게 된 커피는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커피 한잔을 두고 매일 아침 공기가 어제와 어떻게 다른가 찬찬히 느끼게 됐고, 어떤 커피를 맛보러 강원도 깊숙한 곳을 가는 길에는 가족과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고, 분한 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도 한 박자 쉬고 다시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그 시커멓고 독한 물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 건강을 더 돌보게 되었으니 여하간 생활 습관이나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기호식품이 미친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호의 사전적인 정의는 ‘즐기고 좋아함’인데 이렇게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가진다는 것은 삶을 굉장히 풍요롭게 만든다. 그것이 나처럼 커피를 마시는 것이든, 야구 중계를 시청하는 것이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산악자전거를 타는 것이든지 간에, 어떤 일을 선택해 즐기고 좋아하려면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언가에 푹 빠져서 좋아하려면 그에 관한 공부도 해야 하고, 바쁜 일상을 쪼개 그것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쓰게 되면서 삶을 야무지게 쓰는 요령도 생기게 된다.

 그렇게 기호를 가진다는 것은 곧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기호를 가지고 재미를 찾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삶이 언제나 즐겁고 기쁘고 신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나에게 맞는 기호나 재미를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지속적으로 용기 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단순히 기호식품을 넘어 기호 자체를 찾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지만, 일단 자신의 기호와 재미를 찾고 난 다음에는 인생을 만끽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깔린 것과 같다.

 결국 친구는 커피 입문에 실패했다. 생전 카페인이라고는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이 몸에 커피를 들이붓자 당장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행착오로 하나의 선택지를 지우게 되었지만 그는 또 다른 재미를 물색하기 위해 오늘도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에너지가 들고 수고롭지만 백세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 또한 커피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기호를 찾아 떠나야겠다고, 바쁜 가운데 에너지를 좀 더 그러모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