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아침을 열며] 어느 쇠수저 30대의 회상

바람아님 2016. 10. 26. 00:20
한국일보 2016.10.25. 13:54

산모 마음이 편해야 태아 지능이 높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살이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고 한다. 나는 인지 발달이 좀 늦는 아이였다. 영유아의 인지발달은 잘 사는 집일수록 빠르다고 한다. 가난한 부모는 생계로 바빠 아이와 대화할 시간이 없는 탓인 것 같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81%의 응답자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상승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답했다는데 계층상승의 장벽은 참 이르게도 시작되는 것 같다.

집이 어렵다 보니 나는 좀 소극적인 유년기를 보냈다. 나는 운동과 음악을 잘해 야구 승마 바이올린에 관심이 있었지만 내 소질을 찾을 기회는 없었다. 하긴 소질을 찾아도 이를 키워줄 집안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공부해 성적은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래도 잘 안 되는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점수는 부모의 소득수준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신통치 않은 내 영어는 두고두고 걸림돌이었다.


물론 특목고 자사고는 진작 포기했다. 일반고 대비 등록금이 3배이고 기숙사비 등을 포함하면 6배에 이르니 말이다. 나는 배경 좋은 부모 덕에 스펙 쌓기 인턴 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가장 마음을 허탈케 하는 건 가본 적도 없는 대치동이란 동네에 있는 학원들의 논술문제 적중 광고였다. 일부 대학교가 강남 3구 학생은 선행학습 되어 있어 가르치기 편하고 취업도 집안 도움으로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 시 선호한다는 말이 있어 걱정했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월평균 소득 600만원 이상인 서울시 가구는 소득 200만원 이하인 읍면 소재 가구에 비해 14배의 사교육비를 고등학생에게 쓴단다. 그래도 나는 사교육 없이도 중상위권을 유지해 온 점을 입학사정관이 인정해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사교육 안 받은 점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사실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럭저럭 지방대학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학점 알바 연애 동아리 활동을 모두 열심히 해봤다. 그러나 결국 학점이 나빠져 동아리와 연애는 포기했다. 매일 알바를 하다 보니 학점이 신통치 않았다. 저소득층 대상 장학금도 B학점 이상에만 주고 있어 받기 만만치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휴학도 몇 번 했고 학자금 대출도 받았다. 스펙에 도움이 되는 인턴이나 해외연수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취직은 쉽지 않았다. 고용부와 대한상의가 기업의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학력, 자격증, 인턴경력, 학점, 영어를 중시한다는 데 내가 자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을 두고 자격증 등 스펙이라도 쌓고 싶지만 나이 들수록 취직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취직에 빽이 통한다는 이야기 들으면 화가 나고 기운이 빠졌다. 다행히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 임금은 20년 전만 해도 대기업의 85%였으나 지금은 61% 수준에 불과하고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니 나는 언제 여유 있게 살아 보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직장이 생겨 행복했다.


결혼은 좀 늦어졌다. 여러 대출 갚느라 돈을 모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제력을 갖춘 상대와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나와 비슷한 처지의 배우자를 만났다. 연구에 따르면 요즘은 결혼도 학력별ㆍ소득별 끼리끼리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양가 도움을 못 받는 처지라 전세도 어려웠다. 월세보증금도 부족하여 대출받아 신혼을 시작했다.


출산은 그동안 미루었다. 대출금 갚고 생활비 마련하려면 일해야 했다. 결혼 후 2년 만에 첫 아이를 가져 내년에 태어난다. 기쁘지만 키울 일이 걱정이다. 대출금은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 내 집은 마련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아이는 나보다 나을까. 산모 마음이 편해야 태아 지능이 높다는데 어려운 살림살이로 우리 부부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