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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그들이 진정한 보수가 맞나?

바람아님 2016. 10. 25. 00:36
중앙일보 2016.10.23. 19:16

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큰애와 작은애, 딱 반반씩 섞였으면 좋겠다고. 자녀들의 서로 다른 장단점, 다르게 부모를 힘들게 하는 성향을 보며 흔히 하는 얘기다. 그런 것 중 하나가 첫째의 고지식함과 둘째의 당돌함이다. 많은 첫째는 좋게 말해 유순하고 다소 순종적이고 바른 생활적이고, 나쁘게 말해 우유부단하고 아무 생각이 없다. 반면에 둘째는 진취적이고 창의적이고, 동시에 반항적이고 제멋대로다. 오래전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차이를 출생 순서로 설명했다.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기득권자가 된다. 최소한 어렸을 때는 둘째에 비해 항상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세상, 즉 부모가 만든 질서와 규범은 당연하고 옳다고 느껴지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반대로 둘째는 태어났더니 이미 세상은 썩었다. 자기보다 잘난 첫째가 이미 모든 장난감을 독점하고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걷기·젓가락질·똥오줌 가리기 등)으로 자신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둘째는 본능적으로 이 판이 유지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상은 불공정하고 잘못됐기에 변화시키고 청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심지어 형제간에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은 이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 구조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로 보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졌다고 스스로 인식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뭔가를 가졌기에 그 판이 유지되는 것이 유리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경직되고 유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유연하고 자유롭다고 평가받는다.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기존의 체제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은 원칙이나 규범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 원칙을 지키려는 개인적 성향과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존의 체계나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주장을 하려면, 원칙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수적이다.


 어떤 것이 더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회에는 보수와 진보 둘 다 필요하고 매 순간 존재한다. 환경적 변화와 사람의 인식은 항상 일치되지 않는다. 사람은 기존의 믿고 있던 것을 유지하려는 일관성의 욕구가 있기에 일반적으로 동시대 사회 구성원의 평균적인 인식은 환경적 변화보다 살짝 느린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지체(lag)는 항상 보수와 진보의 갈등 형태로 나타나고, 환경적 변화의 속도가 클수록 그 지체와 갈등의 크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원칙과 규범을 지키려는 보수와 바꾸려는 진보 간의 적당한 갈등과 타협을 통해 시대의 정의가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갈등에서 보수의 역할은 중요하다. 진보는 바꾸자는 쪽이니 기존과 현재에 다르고 반대되는 무슨 얘기든지 던져도 되고, 그게 그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보수는 지킬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사회 변화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결국 보수의 역할이다.

그래서 보수는 원칙과 규범을 지키는 사람들과 조직을 편든다. 군인·사법부·경찰과 같은 현재의 규범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조직과 세력에 더 관대한 것도 보수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우방인 미국을 중국보다 중시하는 것이 보수엔 당연하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것, 공권력에 대항하는 자들을 비난하는 것, 범죄에 더 가혹한 처벌을 주장하는 것도 보수의 역할이다. 그래서 백남기씨의 사망도 경찰의 물대포보다는 시위의 위법성이나 폭력성으로 이해하고 ‘왜 처음부터 경찰 버스를 공격하러 살수차 앞에 가느냐’라는 논리를 편다. 원칙적인 부검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나름 보수의 사회적 역할로는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이런 보수성이 왜 선택적으로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온 나라가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비리, 이화여대 입학과 학적 관리 등 수많은 의혹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데, 이들은 보수가 주장하는 원칙과 규범대로 따르지 않았기에 일어난 갈등들이다.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그 수사 보고를 받고, 국회 출석 요구를 무시하고, 재단 설립과 운영은 유례가 없고, 입학요강을 무시하고 정당하지 않은 학점을 받았다. 이러한 논란들은 지금이라도 보수가 그렇게 중시하는 원칙과 규범대로 처리하면 해결할 수 있다. 진정한 보수라면 모든 원칙과 규범을 중시하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원칙과 규범을 지키려 할 때 그 보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부모가 볼 때만 순종하는 척하고 부모가 없을 때는 멋대로 하는 그런 야비한 형은 절대 동생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