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논리로 보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졌다고 스스로 인식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뭔가를 가졌기에 그 판이 유지되는 것이 유리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경직되고 유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유연하고 자유롭다고 평가받는다.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기존의 체제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은 원칙이나 규범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 원칙을 지키려는 개인적 성향과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존의 체계나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주장을 하려면, 원칙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런 보수성이 왜 선택적으로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온 나라가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비리, 이화여대 입학과 학적 관리 등 수많은 의혹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데, 이들은 보수가 주장하는 원칙과 규범대로 따르지 않았기에 일어난 갈등들이다.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그 수사 보고를 받고, 국회 출석 요구를 무시하고, 재단 설립과 운영은 유례가 없고, 입학요강을 무시하고 정당하지 않은 학점을 받았다. 이러한 논란들은 지금이라도 보수가 그렇게 중시하는 원칙과 규범대로 처리하면 해결할 수 있다. 진정한 보수라면 모든 원칙과 규범을 중시하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원칙과 규범을 지키려 할 때 그 보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부모가 볼 때만 순종하는 척하고 부모가 없을 때는 멋대로 하는 그런 야비한 형은 절대 동생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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