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세상읽기] 우리가 잊어버린 일상을 되찾자

바람아님 2016. 10. 21. 23:24
중앙일보 2016.10.21. 00:21 

효과 떨어진 하향식보단 상향식 일상에 돌파구 있다일상을 업그레이드하려면 고통스러운 과정 거쳐야
최근 일상(日常)과 밀접한 작품을 쓴 작가 세 명을 인터뷰했다. 『나의 투쟁』을 쓴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의 이원 시인, 『옆집 남자가 사는 법』의 이경수 작가였다. 크나우스고르는 인구가 500만 명인 노르웨이에서 자신의 일상을 다룬 『나의 투쟁』 50만 부를 팔았다. ‘광팬’들은 그를 보고 다짜고짜 울기 시작한다. 이경수 작가와 이원 시인은 둘 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잔잔한 매혹을 찾아낸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일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어버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죽은 사람에게만 일상이 없다.

누구나 좋고도 꽉 찬 일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일상은 낭비되기 쉽다. 뭔가 부족한 일상, ‘나쁜’ 일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에게 일상이란 ‘정치·국제·경제·경영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인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가 문제다. 정치 편식이 심하다.


여당·야당 왔다 갔다 하며 찍어본 유권자도 있고, 야당이나 여당만 쭉 찍어본 유권자도 있으리라. 바뀐 게 있을까. 저성장 시대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정치 선진국 미국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은 ‘변화’를 내세우며 집권했다. 미국은 변화했을까. 변화했다면 도널드 트럼프 같은 기이한 인물, 버니 샌더스 같은 미국 정치 지형의 이단아가 이번 미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다음 대선에서도 결국 승자는 뭔가 실질이 있기보다는 상대편보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잘 ‘포장’하는 후보일 가능성이 크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제각기 살길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서 일상이다. ‘주상(週常)·월상(月常)·연상(年常)’도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일상’이다. 일상은 ‘파랑새’다. 좋은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에 답이 있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일상으로 돌아가자. 일상을 복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일상은 아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의 연속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상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일상은 규칙적이어야 한다. 부처님은 하루를 다섯으로 나누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시간표에 따라 명상도 하고 종종 제자들과 직접 걸식(乞食)하러 나갔다.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고 가르쳤다. 항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우주를 살폈다. 만나 달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일상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적어도 예수님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마태복음 6장 34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이 말에서 흥미로운 점은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일’이라는 점이다.)

일상을 오늘 바꾸지 않으면 오늘의 일상은 영원히 계속된다. 바꾼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내게 비일상적인 것을 일상으로 ‘고통을 느끼며’ 끌어들이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영어 공부가 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영어가 안 느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 공부가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고통을 일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나이 30에도 40에도 50에도 영어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문사철(文史哲)도 마찬가지다. 문사철이 일상으로 들어가야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자 경쟁력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만 독서가 일상이 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책을 구매한 100명 중 실제로 읽는 사람은 혹시 단 한 명꼴이거나 많아야 열 명은 아닐까.


가만히 보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미 균형 잡힌 일상생활을 살고 있다. 일과 가정 둘 다 잡았다. 놀기도 잘한다. ‘진짜’ 일상은 균형을 좋아한다. 일상은 편향되기 쉽다. 게임, 페이스북, 술 마시기, 댓글 달기 때문에 ‘가짜 일상’의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다. 크고 작은 중독들이 일상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처음에는 더한 불균형이 필요하다. 정리정돈을 할 때 처음에는 오히려 어질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 일상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먹고 자고 일하고 남는 시간을 무조건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독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면 오히려 정치·사회·문화를 어떤 형식으로든 일상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일상의 희생이 불가피한 때도 있다. 대학 1학년 때 지도교수님은 “한 3년 죽어라 공부하면 그 다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눈 뜨면 공부만 하는 지극히 편향된 일상의 시기도 인생의 통과의례로 등장할 수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게 정치에 관심을 끊자는 것은 아니다. 심판도 좋고 정권 재창출도 좋다. 하지만 “#그런데 최순실은”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데 내 일상은”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하향식(下向式·top-down)은 많이 해봤다. 경제 위기는 하향식의 위기다. 상향식(上向式·bottom-up)을 해볼 때다. 일상이 상향식이다. 각자 ‘이기적’으로 찰지게 일상을 살 때 정치도 경제도 잘 굴러가기 시작하지 않을까.


김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