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은 어딜 가도 담배를 문 채 한가로이 신문을 뒤적이는 복덕방 할아버지는 보기 어렵다. 대신 넥타이 차림에 단정히 빗어넘긴 새파란 공인중개사들이 손님을 맞는다.
한때 나이 든 샐러리맨들은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회사 관두면 복덕방이나 차리지 뭐.” 요즘 이랬다간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란 타박을 받기 십상이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들여다보면 확 바뀐 세태를 알게 된다. 19만1000여 응시생 중 20, 30대가 41%인 8만여 명인 반면 50, 60대는 23.5%인 4만5000여 명에 그쳤다. 한때 회자됐던 ‘중년 고시’란 말이 무색해졌다. 전년 대비 증가폭도 20, 30대(38.2%)가 50, 60대(15.5%)의 두 배 이상이다. 갈수록 청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능한 20, 30대 중개사들은 온라인 거래가 활발한 원룸·오피스텔 시장에서 독보적이다. 1초라도 빨리 인터넷에 매물을 올리고 찾아내야 살아남는 시대. 복덕방 할아버지들이 설 땅이 없다.
어디 이뿐이랴. 한의사·미화원 등 어르신 직업으로 통하던 분야에서의 퇴출 역시 심각하다. 지난해 말 16.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대구시 달서구의 환경미화원 모집에서 40대 이하 응시자가 94%였다. 벅찬 체력검사에 겁먹은 50대 이상은 거의 명함도 못 내봤다는 얘기다. 신진기예들의 활발한 진출로 한의사 평균연령 역시 2002년 43.8세에서 2014년 41.8세로 두 살 낮아졌다. 그 기간 한국인 평균수명은 77.0세에서 82.4세로 늘었는데도 말이다.
노·장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곳곳에서 떠든다. 하지만 늘기는커녕 어르신 몫으로 남아 있던 최후의 보루에서조차 쫓겨나고 있는 게 차디찬 현실이다.
일자리 없는 손주에게 염치가 없어서, 명퇴 앞둔 아들에게 미안해서 이들은 “내 몫도 챙겨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효율성 제고’ ‘세대교체’ 같은 거역할 수 없는 명분 아래 그나마 간신히 먹고살던 밥그릇까지 빼앗길 판이다. 엄숙한 진리. 누구나 노인이 된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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