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깔창 생리대’ 논란을 계기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리대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복지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여성 청소년들이 돈 때문에 생리대를 사지 못해 휴지 뭉치나 신발 깔창을 속옷 안에 넣어 대용품으로 쓴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공론화된 것이다. 꼭 신발 깔창이나 휴지를 쓰지는 않더라도 여자라면 누구나 생리대 빈부격차를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생리대를 자주 교환할 수 없어 위생 문제도 생긴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
사생활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지자체들이다. 서울시는 7월부터 각 자치구의 신청을 받아 9월 9200명에게 생리대 5개월 분량을 발송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의 마음을 고려해 택배 포장에는 서울시나 업체 이름을 크게 넣지 않았다. 일반 택배처럼 포장하되 안에는 꼭 알아두어야 할 건강지식이나 성교육 자료도 넣었다. 남몰래 고민하거나 궁금해할 부분을 상담할 수 있도록 길을 튼 것이다. 부모들 반응도 좋았다. 세 명의 딸을 둔 한 아버지는 “이런 부분까지는 신경을 못 썼는데 고맙다”며 감사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면서 잡음도 나왔다. 새로운 사회복지사업인 만큼 중앙정부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청년수당 문제로 보건복지부와 서울시가 한창 싸울 때였다. 이후 중앙정부가 국회 추경예산 30억 원을 내려보내며 서울시는 전체 필요 예산의 30%를, 나머지 지자체들은 50%를 보조받게 됐다. 하지만 내년도 정부예산안에는 편성되지 않아 생리대 지원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양쪽의 갈등으로 생리대 지급을 멈춘다면 아이들의 실망감이 커질 것이다.
일부 자치구들은 “생리대 지원 사업은 큰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체적인 예산으로도 지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의지의 문제란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예산만이 아니다. 복지부의 지원 방식은 지자체의 택배 발송과 달리 보건소를 방문해 받아야 한다. 집으로 오는 택배에 ‘지원물품’이라는 표시만 붙어 있어도 신경이 쓰일 게 뻔한데 직접 보건소에 와서 생리대를 받아 가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다. 생리대는 쌀자루가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하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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