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최태민 일가의 행태가 대중매체를 점령했다. 그 일에 묻혀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질 만한 일들이 그냥 잊혀진다. 이런 사정보다 우리 사회의 척박한 지적 풍토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근자에 그렇게 잊혀진 일들 가운데 하나는 ‘밥 딜런의 노랫말을 시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곧바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질 터여서 모처럼 삶을 깊이 성찰하는 논의가 나올 수도 있었다.
딜런의 노랫말은 워낙 좋아서 시로 대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찍이 나왔다. 20여 년 전 어느 문인 모임에서 나는 시와 노랫말이 점근(漸近)하리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어 “밥 딜런의 노랫말은 천재적인 무엇이지만 시는 아니다”라는 어느 미국 평론가의 말을 소개하고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확신이 없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그러자 시인 오규원 선생이 곧바로 “시입니다” 하고 판정했다.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오 선생이 일찍 타계해서 그 문답을 회고할 수 없는 것이 꽤나 아쉬웠다. 딜런의 수상은 오 선생의 탁견을 확인해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노랫말이 좋은 시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시를 이내 판별할 기준은 없다. 시는 대개 운문이지만 산문시도 있다. 애초에 시로 쓰이지 않은 글들이 시의 유기적 부분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경계가 분명치 않으니 시는 퍼지 집합(fuzzy set)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작품들이 중심부를 이루고, 그 둘레에 시적 특질이 점점 옅어지는 글들이 동심원들을 이룬다.
후하게 평가해도 딜런의 노랫말은 시의 중심부에 들 수 없다. 노랫말의 논리가 시의 논리를 거칠게 제약한다. 대표작 ‘바람 속에 불고 있네(Blowin’ in the Wind)’에서 이 점이 괴롭게 드러난다. 노래로 부를 때는 기막힌데 써놓고 보면 ‘역시 노랫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율은 귀에 거슬리고 내용은 깊이가 없다.
그의 노래는 월남전 반대 운동의 산물이었다. 덕분에 그는 큰 명성을 얻었고 이번엔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상을 받았다. 원래 스웨덴 사람들이 총리까지 나서서 미국의 월남전 참전을 거세게 비난했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월남전 참전을 반대한 사람들의 세계관은 피상적이었다. 그들은 무조건 전쟁을 그만두자고 부르짖었다. 공산주의 북 베트남이 국제협정을 어기고 침략해서 시작된 월남전의 내력을 따지지 않았고, 미국이 남 베트남과 맺은 조약에 따라 참전했다는 사실도 살피지 않았다. 미국이 철군하면 남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점령된다는 지적도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면서 무시했다.
나와 같은 세대의 미국 젊은이들이 품었던 어리석은 열정을 이제 와서 굳이 탓할 것은 없지만, 그들을 대변했던 딜런이 끝내 원숙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다. 미국의 배신으로 남 베트남이 멸망한 뒤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그는 끝내 외면했다. 수많은 사람이 강제수용소에 갇히고 처형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조각배들에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바다를 떠돌았다. 지나가던 배들에 구조된 사람도 많았지만, 끝내 바다에서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보트 피플’의 비극을 노래한 미국 가수는 없었다.
밥 딜런의 노랫말이 시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반전 운동을 넘어 원숙해지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런 피상적 세계관은 엄청난 비극을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성찰해야 한다. 딜런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만큼 원숙해지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곤혹스러운 사실을 모른 체한 것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도 일절 말이 없다가 스웨덴 한림원이 “오만하고 무례하다”고 꾸짖자 딜런이 허겁지겁 수상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들린다. 수용소에서 머리에 비닐 봉지를 쓴 채 숨이 막혀 죽었다는 남 베트남 군인들과 조각배에서 갈증과 허기로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단풍이 들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어지러운 나라처럼 찌푸린 하늘 속 내 가슴에도 검붉게 단풍이 든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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