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붐을 타고 급속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국제결제은행(BIS)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10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민간신용이 ‘보통‘ 단계에서 ’주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BIS가 발표한 민간신용비율 평가에서 한국이 호주, 브라질, 일본, 멕시코, 스위스, 터키와 함께 ’주의‘ 단계로 평가 받았다는 것이다.
BIS의 민간신용비율 평가는 최근 민간부문(가계와 기업)의 부채 증가속도를 지난 88년 이후 장기적인 민간신용증가 추세와 비교해 그 차이(신용갭)를 산출하고, 이 갭이 2%p에서 10%p 사이에 있으면 ‘주의’ 단계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신용갭이 지난 1/4분기 3.1%p을 기록하면서 경고 사인을 받은 것이다.
중국과 캐나다는 신용갭이 10%p를 넘어 ‘경보’ 단계로 평가됐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인도, 남아공은 신용갭이 2%p 미만으로 ‘보통’으로 분류됐다.
신용갭은 민간의 대출 규모를 물가상승률을 포함한 명목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눠 소득대비 대출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가를 지표로 산출하는 것이다. 과거 금융위기를 경험으로 분석한 이 신용갭이 10%p가 넘으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경제성장률이 점점 낮아지고 가계 소득은 정체돼 있는데 대출만 급속히 증가하면서 민간부문, 특히 가계 부문의 부채가 주의 깊게 보고 관리해야 하는 ‘주의’ 단계라는 얘기다.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관계자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경보’ 단계로 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3분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2.7% 가운데 3분의 2인 1.8%p가 건설투자 증가에 따른 성장이고, 가계부채 증가분의 대부분이 지난해 51만 4천 가구로 사상 최대 규모로 분양된 주택 관련 대출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말 까지 전국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26만 3천 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6만 5천 가구와 비슷하다. 한국은행은 분양 계약 이후 입주까지 통상 26개월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2017년 말까지 아파트 집단 대출 관련 주택담보대출만 매달 3-4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1천 257조 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가 올 연말 1천 3백조 원을 넘어 내년에는 1천 4백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 대비 가처분 소득은 갈수록 낮아지는데, 부채는 크게 늘면서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너무 빨리 늘어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 88년 1백 20%를 넘었던 명목GDP 대비 가처분 소득 비율은 지난 2분기 53.7%로 떨어진 반면, 명목GDP 대비 가계부채는 90%를 넘었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가 가처분 소득의 1.6배, 167.5%로 상승했다.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가계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최근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추세를 보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폭은 줄어든 반면 저축은행이나 신협,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의 대출은 크게 늘고 있다. 은행권이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금리가 1%p 정도 더 비싼 비은행권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 보증으로 신용도에 관계없이 일반주택담보대출보다 0.2%p 정도 낮은 최저 수준의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집단대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출받는 사람들은 이주비에 중도금, 입주자금까지 싼 이자로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고, 은행들은 개인고객을 확보하게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올 상반기 집단대출은 11조 6천억 원이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32조 2천억 원이 증가했던 개별주택담보대출은 올 상반기 19조 7천억 원이 증가하는데 그쳤다.
자금 용도별 주택담보대출도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대출금 상환을 위한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크게 낮아진 반면, 주택구입이나 임차, 생계자금 용도의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8개 시중은행의 신규대출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한 결과 대출금 상환용도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5.3%에서 10.2%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면 주택구입용 비중은 43.1%->49.3%, 주택임차용 비중은 6.0%->12.6%로 크게 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주택구입이나 임차용 대출과 함께 생계자금용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24.5%에서 27.1%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금리하락으로 이자소득이 줄고, 월세부담은 늘고, 불경기로 한계가구가 늘면서 빚을 내 생활하는 가구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분양가 자율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2017년까지 유예, 재건축 조합원 분양가능 주택 수 1주택에서 3주택으로 완화 등 부동산 투자 3법의 통과로 아파트 분양이 크게 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상가 등 상업용부동산에 대한 투자수요도 대출 증가에 한몫 했다. 지난 2/4분기 기준 상가(집합매장용)의 평균임대수익률은 5.5%로 은행정기예금금리 1.5% 뿐만 아니라 오피스텔(4.8%)이나 아파트(3.6%)의 임대수익률보다 높은 것으로 한은은 추산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대수익률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민간신용이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이후 3차례의 순환기를 거쳐 현재 제 4순환기의 확장 국면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확장국면은 2008년 금융위기가 끝난 뒤 2010년 4분기 이후 22분기, 5년 6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과거 확장국면의 지속기간 평균치(22.3분기)에 도달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신용은 1988년 4분기 이후 41분기 동안 확장했다가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계기로 수축기로 돌아섰다. 제 2순환기인 2000년 4분기부터는 민간신용이 8분기 동안 확장된 뒤 2003년 3월 신용카드 사태를 계기로 수축 국면으로 바뀌었다. 제 3순환기는 2005년 1분기부터 2010년 4분기로 분석됐다. 이때 민간신용은 18분기 동안 확장됐다가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여파로 수축 국면을 맞았다.
한은은 "과거 세 차례 수축 국면으로의 전환이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리먼 사태 등 주요 금융사건을 계기로 일정 시차를 두고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민간신용의 확장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현재의 확장국면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확장국면의 종말이라는 것은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금융위기라는데 문제가 있다.
김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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