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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아베 신조의 경제 리더십이 부럽다

바람아님 2016. 10. 31. 23:58
중앙일보 2016.10.31. 00:34 

아베노믹스 문제점투성이에 디플레 여전해도필사적 개혁 노력으로 일본 경제 활력 되찾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인에겐 참 부담스럽다.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해 불안감을 조장한다. 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가 살아 있는데도 불가역적으로 합의됐으니 다시는 거론하지 말자는 궤변도 늘어놓는다. 이런 그를 좋아할 한국인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일본은 2012년 말부터 시동을 건 아베노믹스를 통해 금융완화·재정확장·구조개혁이란 세 개의 정책 화살을 4년째 쏴대고 있다. 하지만 1차 목표인 디플레이션 수렁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일본 경제를 낙관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깡그리 실패했다고 보는 건 오산이다. 꿩 대신 닭은 잡았다고 볼 수 있어서다. 만약 아베노믹스라도 없었다면 일본 경제의 침체 수렁은 더욱 깊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베의 지휘 아래 일본 경제는 곳곳에서 막힌 곳이 뚫리고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선 7조원어치의 쌀 수확을 위해 비용 3조원을 투입하지만, 일본은 쌀 집착에서 벗어나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가 추진하는 외국인 근로자 ‘수입’이 단적인 사례다. 일본에선 농업의 기업화가 급진전되면서 월급쟁이 농부가 일반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내년에는 농업 분야에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은 3년 한도 취업연수생 제도여서 일을 할 만하면 내보내야 한다. 새 제도는 일손 부족을 해소하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포괄적 증여는 정말 부러운 정책이다. 아베는 총리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부터 ‘교육·결혼·육아자금 일괄증여 비과세제도’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에게 최대 2500만 엔(약 2억7000만원)까지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는 파격적 소비 증대 방안이다. 이 돈으로 예식 비용과 신혼주택의 월세, 출산 비용, 불임치료비, 육아도우미 비용, 입학금, 수업료, 급식비를 내면 비과세된다. 한국은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건의했으나 부자들에 대한 특혜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시급한데도 정부와 국회는 무사태평이다. 1억총활약상을 신설한 일본과 대조된다. 일본의 출산율은 1.42명으로 한국의 1.24명보다 높지만 격차 확대가 예상된다.


‘고향 납세’도 무릎을 치게 한다. 이 제도는 누구나 3만 엔 상한으로 지자체에 기부하면 2000엔을 뺀 전액을 환급해 준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8년 도입됐는데 아베가 지난해 기부 상한액을 5만9000엔으로 늘렸다. 그러자 기부액이 세 배로 뛰었다. 좋은 정책은 전임 정부의 것이라도 장려한 결과다. 앞 정부의 정책은 다 지우는 한국과 대비된다.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은 효과 작렬이다. 아베는 4000개였던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을 2만여 개로 늘렸다.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은 출국 시 세금을 환급받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물건을 살 때 즉시 소비세를 면세해 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일본 방문 외국인은 1년 전보다 47% 증가한 1974만 명을 기록했다. 그 사이 한국은 6.8% 감소한 1323만 명으로 주저앉아 2008년 이후 7년 만에 외국인 관광객 유치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러·일 경제협력은 한국을 외톨이로 만들지도 모른다. 쿠릴열도 반환 협상의 마중물로 추진하고 있는데 아베의 접근은 집요하다. 지난 5월에는 러시아 소치를 찾아가 1조 엔(약 10조8000억원)에 달하는 8개 항의 경협 방안을 제시했고 12월에는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로 푸틴을 초청해 경협 방안에 쐐기를 박을 예정이다. 올해 16번째 양국 정상회담의 결과다. 합의가 되면 투자처를 찾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 일본 기업이 러시아 전역에서 개발권을 갖게 된다. 내년 2월 도입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도 아베가 총감독이다. 일찍 퇴근해 쇼핑과 외식을 하고 여행을 떠나도록 독려하는 제도다. 고육지책이지만 내수 진작을 위해 한번 해보자는 뚝심의 발로다.


이렇게 활력을 불어넣자 취업희망자의 청년 고용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97%에 달한다. 기업은 일손 부족으로 상시 채용전쟁 체제다. 아베의 리더십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