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타인위한 공감능력 갖춰야
최근 매력적인 남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상남자’(남자 중의 남자),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츤데레’(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 등의 단어가 대중매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완소남’이나 ‘꽃미남’ 같은 표현은 남성의 외모에 대한 은근한 상품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상남자’ 같은 표현은 남자다운 남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츤데레’는 일본어식 표현에서 따온 것이라 더욱 찜찜하다. ‘나쁜 남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알고 보니 굉장히 따뜻하고 여린 감수성을 지녔는데, 그가 잘생기기까지 했을 때, 여성들이 그에게 열광한다는 식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다. 과연 이런 단어들이 현실의 남성들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남자다운 남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문열의 198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과격하고, 공격적이고, 소유욕 강하고, 자신이 최고로 군림하지 않으면 한시도 참을 수 없는 소년 엄석대. 그는 요샛말로 하면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에 가깝다. 그 어린 소년이 학급의 모든 일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마치 꼬마 독재자처럼 학급의 분위기를 공포 일변도로 만드는 동안,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조차도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 한병태가 유일하게 엄석대에게 강력한 저항을 시도해보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한병태가 엄석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수갑이 채워진 채 형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엄석대의 악행을 바로잡지 못했기에 끝내 그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정여울 작가 |
그렇다면 바람직한 남성상은 무엇일까. 적어도 다가오는 시대의 남성상은 ‘나쁜 남자’와 ‘강한 남자’에 대한 환상을 벗어난 현실적인 이미지, 좀 더 타인을 향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됐으면 한다. 목표를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를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미래의 남성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군림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는 남성성에 너무도 지쳤으니까. 그릇된 방식으로라도 ‘힘’을 표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너무도 지쳤으니까. 배려와 존중은 여성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타인의 슬픔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사람들의 아픈 어깨를 따스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공감능력’이 미래의 남성상이 되기를 간절히 꿈꿔 본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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