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31] 개 한 마리 목청 높이자… 동네 개들 따라 짖네

바람아님 2013. 8. 15. 09:28

(출처-조선일보 2012.11.04  손철주 미술평론가)


'달 보고 짖는 개' - 김득신 그림, 종이에 담채, 25.3×22.8㎝, 18세기, 개인 소장.

그림 왼쪽에 멋을 부려 흘려 쓴 글씨가 있다. 운율을 갖춘 시인데, 뜻을 풀이해보면 문득 웃음이 난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네. 

    만 마리 개가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는구나. 

    아이에게 문밖에 나가 보라 시켰더니, 

    달이 오동나무 가장 높은 가지에 걸렸다 하네.' 

개들은 그렇다.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개 소리는 갈수록 요란해진다. 영문도 모르고 짖는 대부분의 개와 달리 맨 처음 개가 짖었을 때는 꼬투리가 있었을 테다. 그림에서는 달이 휘영청 떠올라서 그렇단다.

웃기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작품이다. 김득신은 화원(畵員)을 줄줄이 배출한 개성 김씨 가문인데 위아래 대(代)가 다 화가일 만큼 내림 솜씨를 뽐냈다. 이 그림도 실소(失笑)가 터지는 풍자화다. 되지도 않은 개소리를 에둘러 나무란다.

개 짖는 소리를 우스개 삼은 글은 꽤 많다. 조선 중기 문신 이경전(李慶全)이 어릴 때 아버지 무릎에 앉아 읊었다는 시가 바로 그림 속의 글과 빼닮았다. 중국 개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후한 시대의 정치에 관한 책 '잠부론(潛夫論)'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한 마리 개가 짖는 시늉을 하면 백 마리 개가 소리 내 짖고, 한 사람이 헛되게 전하면 백 사람이 사실인 양 전한다.'

그림을 다시 보니, 개한테 죄를 다 뒤집어씌우기가 미안하다. 오동잎 널찍한 시골의 가을 한밤, 달은 덩두렷하고 초가집 사립문은 옹색하다. 개 짖는 소리에 뛰쳐나온 아이가 두리번거리고 검둥개는 나뭇가지에 달이 걸리자 턱을 쳐들고 컹컹 짖는다. 녀석의 앉은 품새가 얼핏 '생각하는 개' 같다. 놈이 무슨 흥이 있어 달빛에 취할까마는 왠지 미련퉁이는 아닐 성싶다. 덜된 놈은 언제나 덩달아 짖는 개들이다. 상주보다 서러운 곡(哭)쟁이는 눈꼴이 시린 법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 안에 잡소리가 넘쳐난다. 동네 개들이 듣고 따라 짖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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