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30] 서로 물고 뜯다 보면 저런 자 나타난다

바람아님 2013. 8. 14. 19:43

(출처-조선일보2012.10.28 손철주 미술평론가)


조개가 모처럼 조가비를 벌렸다. 이때 새가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다. 조개는 부리를 물고 놓지 않았다. 새가 조개에게 말했다. "오늘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너는 말라 죽는다." 조개가 새에게 말했다. "오늘 못 빠져나가고 내일도 못 빠져나가면 너는 굶어 죽는다." 조개와 새는 지지 않으려고 서로 버텼다. 지나던 어부가 두 마리를 다 잡아갔다. 이게 어린아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어부지리(漁夫之利)' 얘기다. 중국의 우언(寓言)이 가득 실린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어부지리'… 이인문(1745~1821) 그림, 종이에 담채, 22.6×26㎝, 18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마침 어부지리의 고사(故事)가 조선시대 그림에 남아있다. 단원 김홍도와 동갑이자 단짝인 화원(畵員) 출신 이인문(李寅文)이 무슨 흥이 돋았는지 우스꽝스러운 풍경으로 이를 묘사했다. 강가에 갈대가 우거졌다. 한쪽 귀퉁이에서 조개와 새가 지금 힘겨루기하느라 쩔쩔맨다. 새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오르려 하고, 몸집이 새에 버금가는 조개는 질세라 조가비를 꽉 조이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배불뚝이 어부의 행색이 영판 웃긴다. 너절한 삿갓을 쓰고 허리춤에는 담뱃대와 쌈지를 꿰찼는데, 낚싯대는 어디다 버렸는지 없고 낯판이 고기잡이가 아니라 산(山)도적처럼 털북숭이다. 뭐 그리 대단한 횡재수라고 두 발은 살금살금, 두 손은 조심조심, 두 눈은 홉뜬 채 숨죽이며 다가간다.

붓 다루는 재주가 단원에 못잖았던 이인문이었다. 그는 명쾌한 짜임새로 고사의 주제를 한눈에 펼쳐 보인다. 조개와 새의 다툼이 생동하고, 어부의 걸음새에 긴장이 서렸다. 어부지리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파견된 연(燕)나라 세객(說客)이 인용한 예화다. 조가 연을 공격하면 득을 보는 쪽은 진(秦)나라이니 둘이 싸워봤자 양쪽 모두 얻을 게 없다는 논리였다. 요즘 싸움판도 다를 바 없다. 서로 물고 뜯는 사이에 어부지리를 챙기는 작자가 꼭 있다. 그래 본들 일쑤 티끌 같은 이득이다. 조개나 새라면 구이라도 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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