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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살다 전장을 찍고 전장서 죽다

바람아님 2013. 8. 16. 09:59

전쟁사진가 '카파' 100주년 사진전

국내 첫 원본 프린트 160점 공개

전세계 지성이 반파시스트 대열을 형성해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1936~1939).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기자로 종군하면서 훗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고 파블로 피카소는 대작 '게르니카'를 그려 학살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는 1936년 찍은 '코르도바 전선에서 쓰러지는 병사'에서 죽음의 순간을 정지화면 속에 얼어붙은

것처럼 묘사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헝가리 출신의 20대 종군사진가를 일찌감치 전설로 만든 '코르도바…'를 둘러싸고

연출에 의한 것 아니냐는 유명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카파의 삶은 그에게

'가장 위대한 전쟁사진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사진전이 경향신문사 주최로 8월2일부터 10월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에서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카파전엔 특히 국내 최초로 뉴욕국제사진센터 소장 원본 프린트 160여점이 소개된다.

뉴욕국제사진센터는 친동생 코넬 카파가 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으로, 이번에 오는 원본 프린트는 동생이 직접

고르고 인화한 사진들이다. 카파가 사용한 마지막 카메라 등 다양한 소품들도 소개된다.

스페인 내전 이후 카파는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자 중국으로 달려갔으며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또다른 대표작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 6월6일 총을 든 병사들과 함께 카메라를 든 카파가 첫 상륙정을 타고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 속에 해변으로 뛰어들어 찍은 사진이다. 이 상륙작전 첫날 24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카파는 책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에서 이날을 설명한다.

"쏟아지는 총탄은 나를 둘러싼 바닷물에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고 날씨는 흐렸다. 그러나 회색의

바닷물과 회색의 하늘은 히틀러의 참모들이 세운 초현실적으로 생긴 상륙저지용 구조물 아래서 몸을 피하고 있는 (작게 보이

는) 군인들 사진을 아주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었다. 매번 총탄은 나를 따라다녔다. 주검들이 떠다니는 사이에서 나는 다음 은

폐물인 탱크로 향했고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었다. 이제 독일군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화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쟁을 부정하기 위해, 전쟁을 싫어해서, 전쟁의 참상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전쟁을 찍었던 그는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에서 퇴각하는 프랑스 부대를 찍다가 지뢰를 밟고 세상을 떠났다.

목격자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그를 발견했다.

카파의 사진인생과 사진철학은 '카파이즘'으로 살아남았다. 카파이즘은 "현장에, 그것도 가까이 있을 것"으로 귀결된다.

위대한 전쟁사진가라는 호칭은 카파가 우연히 그 장소에서 멋진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의 현장이었던

전쟁터는 모두 그가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었고 그 속에서 건져낸 사진이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