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19 최보식 선임기자)
[박근혜 정책 백지화의 첫 표적 '국정 역사교과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노무현 정부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단일화
그땐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이 의심 갖고 있어"
"1948년은 반만년 역사에서 국민이 처음 직접 투표 행사
혁명적 국가체제 대변혁 이뤄… 진보 학자들, 이런 의미 무시"
야당이나 진보교육감, 그쪽 시민단체에서는
"박 대통령이 범법자로 탄핵됐으면 역사 교과서도 탄핵된 것"이라고 공격 중이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박근혜 정책 백지화(白紙化)의 첫 표적이 됐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든 김정배(76) 국사편찬위원장의 심정은 어떨까.
고려대 총장을 지낸 그는 한때 후학의 존경을 받던 고대사(古代史) 권위자였다.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나는 배려없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운명(運命)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좋은 책을 낸 걸로 내 역할은 끝났다. 그다음부터는 교육부 장관이 정책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다."
―백지화되면 '교과서 역할'도 못 해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 탄핵과 역사교과서를 구별해야 한다. 정치가 교육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당초 국정화 추진 자체가 교육에 대한 정치 권력의 개입이었다.
현 정권이 좀 무리하게 밀어붙인 면이 없지 않았는데?
"기존 검인정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을 다른 방법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었기에 추진됐다.
논란은 있었지만 국정화는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만약 폐기하겠다면 이 또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내년 신학기부터 중·고교 교육과정은 국정 역사교과서로 맞춰져 있다.
이 시점에서 뒤엎으면 일선 학교에서는 여러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기존의 검인정 역사교과서(8종)를 연장해 그대로 쓰면 되지 않는가?
"교과서는 행정 고시(告示)된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다. 검인정 교과서는 금년으로 끝나고,
내년부터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쓰도록 돼 있다.
이런 법적 절차 없이 없애거나 새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백지화하겠다면 지금부터 두세 달 안에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해 교과서를 다시 집필해야 한다."
―국정과 검인정을 혼용(混用)하자는 중재안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식 교육부장관은 "법령상 쉽지 않은 절차"라고 했는데?
"혼용한다면 그건 국정교과서 체제가 아니다. 더욱이 교육과정이 다른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과 함께 쓸 수도 없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반대하더라도 이 교과서를 한번 읽고 반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교육과정'이 다르다는 걸 이해 못 하겠다. 검인정 교과서도 똑같이 한국사를 담고 있지 않은가?
"교과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의 범주에서 집필된다.
어떤 체제와 내용, 용어로 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놓은 것이다.
학문 발전과 사회 상황 변화에 따라 교육과정은 5~10년 간격으로 바뀌어왔다.
일례로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은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기술했지만,
이번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뀐 것이다."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한 것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가장 논쟁적인 대목인데?
"작년에 행정고시된 교육과정에 그렇게 되어있다."
―이는 '국정교과서'여서 그렇게 기술된 게 아니라,
검인정 교과서 체제가 유지됐어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됐다는 뜻인가?
"그렇다. 작년 여름에 그런 교육과정이 고시(告示)됐다.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갔다 해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에 교육과정이 고시됐을 때 논쟁이 됐어야지, 왜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됐는가?
"사실 이는 논쟁거리도 아니다. 과거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혼용돼왔다.
섞어쓰면서 별로 고민이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시절(2007년) 고시한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단일화했다. 우리는 '정부 수립'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썼다.
그때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이 의심을 갖고 있다. 그게 지금까지 써오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다.
이를 2015년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친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 상해 임정(臨政)'이라는 주장이 만만찮은데?
"국가의 기본 요소는 '영토·국민·주권'이다. 임정(臨政)은 말 그대로 임시정부였다.
그때 국가로서 완성됐다면 왜 독립운동을 했겠나.
1948년에는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국민이 처음으로 직접 투표를 행사해 혁명적인 국가체제 대변혁이 이뤄졌다.
소위 진보 학자들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은 내세우면서 왜 이 의미는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교육과정을 마련할 때 참여했나?
"내가 국사편찬위원장이 되기 전에 이뤄졌다. 만약 참여할 수 있었다면 나는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도
'일제항쟁기'로 바꾸자고 했을 것이다. '일제식민지' '일제 치하'라고 써오다가 십몇년 전부터 '일제강점기'로 바뀌었다.
이는 '미제(美帝)강점기'처럼 북한 역사서인 '조선통사'에서 나오는 용어다."
―이번 교육과정에서 크게 바뀐 내용은?
"북한 관련 기술이 좀 줄어들었다.
기존 교과서에는 주체사상·천리마운동·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에 나오는
마르크스주의적 5단계 발전론 같은 내용까지 소개됐다. 이 때문에 이념 논쟁이 촉발됐던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미화(美化)'로도 공격받고 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서술 분량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인데?
"분량이 좀 많은 것은 박정희 집권 기간이 18년이었기 때문이다. 분량이 많다고 미화가 아니다.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기술하다 보니 늘어났다. 우리는 좀 더 여유 있게 과거를 조명해야 한다."
―5·16 쿠데타 직후 검은 선글라스의 박정희 소장 사진이 교과서에서 빠진 것도 논란이 됐다.
박정희의 부정적 이미지를 순화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번 교과서에서 사진을 쓴 대통령은 이승만·박정희·김대중뿐이다.
사진 한 장을 고를 수밖에 없기에 박정희 경우에는 포철 창업자 박태준과 같이 나오는 걸로 썼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는 노동운동의 상징인물인 전태일 사진이 나오지만,
이번 교과서에는 자본의 사회 환원에 힘썼고 경영권을 처음으로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줬던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의 사진도 게재했다. 오늘날의 경제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병철·정주영도 기술했다.
이렇게 해야 학생들이 현대사를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작년에 국정화 추진을 발표했을 때 사학계에서는 대부분 반대했다. 국정에 찬성하면 '왕따'가 되는 분위기였다.
김 위원장의 제자들도 등을 돌렸던 걸로 안다. 집필진을 구하는 데 어렵지 않았나?
"내가 만나 설득했다. 초빙으로 20명, 공모로 16명 선정했다. 집필진을 뽑을 때 내 전권으로 했다.
좌우 극단(極端)의 학자들은 배제했다. 이번 집필자들은 일류다.
(국정교과서와 기존 검인정 교과서의 집필자 명단을 보여주며) 비교해보면 수준 차이를 금방 알 것이다."
―집필진을 공개하라는 압력이 있었는데?
"그때 분위기로는 노출되면 집필하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거의 여론 테러였으니까.
총리, 교육부 장·차관도 집필진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모르게 했다. 집필진에게는 일일이 '보안 서약'을 받았다.
전체나 팀별로 모여 집필 회의를 할 때도 사람들의 눈에 덜 띄는 장소를 옮겨다니며 했다."
―박정희 유신체제 시절인 1974년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꾼 적이 있었다.
당시 고려대의 젊은 교수였던 위원장께선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며 반대한 걸로 아는데?
"그때는 강하게 반대했다."
―젊어서는 학문의 자율성·다양성을 옹호하고서, 지금 와서는 왜 국정화에 참여했느냐?
"자유민주주의가 진전됐으면 교과서가 수준 높게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좌편향'으로 흘러갔다.
바깥에서는 대한민국을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이런 자랑스러운 모습은 제대로 기술되지 않고, 흡사 정통성은 북한에 있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기술돼왔다. 현대사 전공자 상당수가 좌편향돼 있거나 민주화 투쟁 위주 역사관에 지배돼있기 때문이다.
다른 입장을 가진 소수는 제목소리를 못 내었다."
―편향성 문제를 해결하는 답(答)이 과연 시대를 역행하는 국정화인가?
"기존 검정교과서 집필진은 어떤 대목에서는 교과과정을 따르지 않았고, 책이 나온 뒤 이를 수정하라는 권고에도
결코 승복하지 않았다. 교과서를 놓고 법정 소송으로 가기 일쑤였다.
국정화는 이런 검인정의 실패 때문에 나온 것이다. 원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국사편찬위원장으로 갈 때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나?
'노년에 자리 욕심 때문에 갔다'는 비난도 받았을 텐데, 학자로서 명예는 돌아보지 않았나?
"학자로서의 명예는 고려대 총장으로서 끝이 났다. 이 작업에 참여한 것은 우리나라를 위한 내 소신이었다.
기존 검인정 역사교과서보다 더 좋은 책을 내는 것을 내 책무로 여겼다."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국정화'라는 형식도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정화 과정을 한 번은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정화는 통과 의례이고 과도기적 대안(代案)이다.
이를 통해 학계나 교과서 집필진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와 시간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검인정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작년에 국정화를 추진할 때 나는 개인적으로 반대 입장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곧 폐기될 교과서'라고 내다봤는데,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아예 '교과서 역할'도 못할 것 같다.
"국정교과서의 생명력이 얼마 가든 간에 누가 봐도 참고할 수 있게 제대로 만들자는 심정으로 임했다.
반대하더라도 이 교과서를 한번 읽고 반대했으면 좋겠다.
책이 나오기도 전에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공격했다.
막상 공개본이 나오자 '친일 미화'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이 문제를 봐줬으면 한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과 비교 검토해본 교육 담당 기자들은 '질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낫고 편향적 시각을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내 견해도 비슷하다.
지금 국정교과서를 '탄핵'하면, 새학기를 두 달 반 앞둔 일선 학교의 혼란이 극심할 것이다.
내년 한 해는 해보고, 나중에 절차를 밟아 검인정으로 돌아가도 된다.
야당과 진보교육감, 그쪽 시민단체들이 대판 싸움을 벌일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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