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엔 섬이 있기 전에 그 섬으로 가는 거리가 있다. 나는 그 거리가 좋고, 아름답고 싶고, 잘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그 거리도 존중받길 바란다. 하지만 그 거리를 재는 자는 저마다 달라서 아무리 ‘거리 존중’을 말한들, 그것은 타인의 거리일 뿐이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 산책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라던가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눈을 피하는 이들이 인사를 받아주는 이들보다 훨씬 많다. ‘나를 알아요?’ 하는 의아한 눈길들. 많은 이들이 가벼운 목례조차 그렇게 당황스러워 한다. 그러니 타인에겐 무관심해야 한다. 적어도 도시생활에선 그것이 예의다. 그렇다한들 나는 처음으로 만나는 이들에겐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의 상냥함을 갖추고 대하는 편이다. 그렇게 알게 된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극소수의 사람들과는 깊은 우정을 맺고 있다.
그러나 상냥함으로 대한 이들 중에는 가끔, 들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혼자만의 이야기를 갑자기 들려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당황스러워서 깍쟁이처럼 굴며 선을 긋게 된다. ‘당신과의 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친절했던 내 첫인상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그럴 땐 아예 처음부터 쌀쌀했던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한 타인의 거리는 가깝지만 견고하다. 외롭지 않을 만큼의 온기는 좋은데 데일 듯 뜨거운 건 싫다. 하지만 적당한 온기를 바라는 이를 내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 또한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 못잖은 무례일 수도 있다. 그 최고의 접점인 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거리는 전광석화처럼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오해와 이해가 차곡차곡 쌓이며, 삐뚤어진 것도 있고 바른 것도 있으면서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친해지지만, 그런 거리는 더 빨리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기 힘들다.
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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