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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백제 구구단 목간

바람아님 2017. 1. 17. 23:30
경향신문 2017.01.17 21:24


‘九〃八一 八九七□□ 七九六十三….’ 2011년 6월 사비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쌍북리 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숫자가 새겨진 목간 1점(사진)이 수습됐다. 처음엔 문서나 물건 등을 보내면서 단 물품 꼬리표인 줄 알았다. 5년 뒤인 2016년 1월16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한 발표회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목간의 적외선 촬영 사진을 지켜보던 목간학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거, 구구단표야. 구구단 목간이 틀림없어.” 당시 학회 섭외이사였던 이병호씨(익산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는 사진파일을 받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숫자의 패턴을 찾아갔다. 9×1=9, 9×2=18… 뭐 이런 식이 아니라 9×9=81, 8×9=72, 7×9=63…으로 나가는 구구단이었다. 1×2, 1×3… 등은 생략했다.


무엇보다 각 단마다 ‘칼’같이 가로선을 그어 구별한 것이 눈에 띄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구구단 목간의 출토사례가 있다. 그러나 쌍북리 목간처럼 정교한 구구단표는 없다. 또 6단은 6×6, 5단은 5×5, 4단은 4×4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밑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결국 3단은 3×3, 2×3, 2단은 2×2만이 남는다. 그래서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직각삼각형의 구구단 목간이 되었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매우 실용적인 구구단표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쌍북리는 사비기 백제의 관청과 관영창고, 공방이 밀집했던 지역이었다. 백제 관리들은 예산을 짜거나 물품을 주고받을 때 직사각형 구구단표를 손에 쥐고 검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옛 조상들이 구구단을 인식했음을 알려주는 금석문이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오는 ‘이구등조(二九登祚)’ 기록이다. 광개토대왕이 2×9=18살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왜 하필 ‘구구단’이라 했을까. 예부터 동양에서 구(九)는 경외로운 숫자였다. 9는 단수 가운데 가장 큰 수여서 무한의 의미를 갖는다. 또 하늘이 9겹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구중천(九重天) 혹은 구천이라 했다. 그 9번째 겹에 천제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9×9부터 시작하는 ‘구구단’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물품 꼬리표 정도로 치부되어 묻힐 뻔했던 쌍북리 구구단 목간은 극적으로 되살았다. 일본학자들은 한반도에서 구구단표가 발견되지 않자 “구구단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수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지 않는가. 다시 한번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