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만물상] '양천 현감' 정선(鄭敾)

바람아님 2013. 8. 24. 09:26

(출처-조선일보 2013.08.24)


한국 미술사에 손꼽히는 화가 겸재(謙齋) 정선이 양천 현감에 발령받은 것은 1740년 가을 예순다섯 살 때였다. 부임 얼마 후 그는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으로부터 한시(漢詩) 편지를 받았다. "홀로 떨어져 있다 말하지 말게/ 양천에 흥이 넘칠 터이니…." 겸재는 바로 붓을 들었다. 그가 다스리는 양천 관아 풍경을 일필휘지로 그려 사천에게 보냈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1동 239번지 일대 주택가다.

▶겸재와 사천은 한양에서 헤어지며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을 약속했다. 사천이 시를 써 보내면 겸재는 그림을 그려 서로 바꿔 보기로 했다. 시와 그림이 꾸준히 오가며 열매 맺은 것이 조선 회화사에 빛나는 '경교(京郊)명승첩'이다. 화첩에는 만년의 겸재가 한강 명승들을 원숙한 필치로 그린 서른세 점과 사천의 시가 들어 있다. 겸재는 화첩 곳곳에 '千金勿傳(천금을 준다 해도 남의 손에 넘기지 말라)'이라 새긴 도장을 찍었다. 자손들이 대대로 간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옛말에 "양천 원님은 부임할 때 울고 떠날 때 운다"고 했다. 양천은 한강 하류에 있어 수해가 잦은 데다 변변한 농경지도 없었다. 그러나 서·남해안으로 통하는 육로와 뱃길의 길목이어서 물자가 풍성했다. 어느 해 경기 지역을 감찰한 암행어사가 겸재를 '謹拙居官(근졸거관)'이라 평가한 보고서를 영조에게 올렸다. "양천 현감은 신중하며 재주 부리지 않고 순박하다"는 뜻이었다.

▶화가 겸재를 기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양천의 수려한 풍광이었다. 밝은 태양과 냇물이 아름답다는 '양천(陽川)'의 뜻 그대로였다. 소요정 이수정 소악루 귀래정 낙건정 개화사 선유봉 양화진…. 겸재는 '경교명승첩'과 별도로 '양천 8경'을 화첩으로 남겼다. 겸재는 양천에 간 덕에 명작을 낳았다. 그리고 양천은 겸재라는 걸출한 화가를 만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경들을 후세에 전할 수 있었다.

▶서울시가 강서구 마곡동·가양동 일대 여의도 두 배만 한 미개발지를 2016년까지 세계적 화목원(花木園)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옛 양천 고을에 속했던 지역이다. 서울시는 "겸재가 양천 현감 때 그린 풍광을 화목원에 재현하겠다"고 했다. 겸재가 감탄하고 사랑했던 양천 풍경들을 되살려 보겠다니 반갑다. 한편으론 토목 공사를 하듯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려다 보면 겸재 그림의 품격과 아취(雅趣)를 살릴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긴 안목을 갖고 처음부터 사업의 방향과 방법을 잘 잡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관련자료]   

    마곡지구에 어린이대공원 규모 ‘보타닉 파크’  

     

    ■ ‘서울 화목원’ 2016년 준공 예정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미개발지인 강서구 마곡·가양동 일대 마곡지구에 여의도공원보다 배 이상 넓은 ‘보타닉 파크(Botanic Park·식물원+도시공원)’가 조성된다. 서울 서남권(양천 강서 구로 금천 영등포 동작 관악구)에 대형 공원이 갖춰져

    인근 320만 명이 직접적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5000여 종의 식물을 전시, 교육, 체험하는 도시형 식물원과, 여가·휴양 성격의 호수공원을 결합한 가칭 ‘서울 화목원

    (花木園)’을 2016년 12월까지 준공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전체 면적은 50만3431m²로, 여의도공원(약 23만 m²)의 배가 넘는 규모다. 당초 이 지역에는 2008년 오세훈 전 시장 당시

    한강과 연결되는 수로와 요트 선착장 등을 만들기 위한 ‘워터프런트’ 사업이 추진됐었다. 하지만 수질 및 유지 관리의 어려움,

    경제적 타당성 부족 등의 논란으로 좌초된 뒤 2011년 5월 호수와 육상공원 등을 조성하는 마곡 중앙공원 조성사업으로

    변경됐다가 이번에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왔다.

    기본 원칙은 ‘식물’과 ‘호수’를 주제로 인공시설을 최소화하고 자연요소 도입을 극대화하는 것. 조선시대 진경산수화(眞景山水

    畵)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경기 양천현(현 서울 강서구) 현령 시절 그린 ‘종해청조(宗海廳潮)’ 등에 나타난 옛 마곡 지역의

    풍광을 살려낼 계획이다.

    공간은 크게 △식물원 △열린숲마당 △호수공원 △생태천이원(생태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공원 동쪽 6만 m²에는 미래자원식물, 약초식물, 자생종 등 5000여 종을 갖춘 식물원이 펼쳐진다. 식물원의 랜드마크인 연면적

    약 1만 m² 규모의 ‘식물문화센터’에는 전시온실 식물도서관 가드닝센터가 들어선다. 전망대, 전시, 교육, 공연, 원예 체험, 식물

    판매 등 다목적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공원 입구를 중심으로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예정), LG문화센터 등과 직접 연결되며, 양묘장을 설치해 직접 식물을

    기르면서 성장을 관찰할 수 있도록 꾸민다. 공원 서쪽에 자리 잡는 호수공원은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조성한다. 양천길 남쪽은

    습지생태 중심의 호수로, 북쪽은 생태천 중심으로 만들고 상업시설과 연계한 물놀이 공간도 조성한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색다른 볼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 관계자는 “식물원은 세계 각 도시의 문화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라며 “싱가포르 보타닉가든에 연간 530만 명이 방문하는 등 미국(브루클린 식물원)과 영국(에덴 프로젝트),

    프랑스(보르도 식물정원) 등의 주요 도시 식물원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공원 조성계획이 확정되면서 워터프런트 사업이 백지화된 뒤 다소 활력을 잃었던 마곡산업지구 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지구 분양에도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SH공사는 다음 달 초 마곡지구에서 전용면적 84∼104m² 2854채

    를 공공분양 물량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으로 그린웨이를 조성해 궁산(13만 m²)과 연결하고, 서남물재생센터(84만 m²)를 공원화하면 개화산

    근린공원(38만 m²)과 합쳐 185만 m²의 대형 녹지축이 완성된다”며 “100년을 바라보고 계획해 아시아 최고의 보타닉 파크로

    발전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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