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12.09 손철주 미술평론가)
'허유와 소부'(부분) - 한선국 그림, 종이에 담채,
34.8×24.4㎝, 17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요(堯)는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聖君)이다. 그 태평하던 시절에 허유(許由)는 숨어 살았다. 허유는 고결한 인물이었다. 요 임금은 그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기로 했다. 임금의 뜻을 전해 들은 허유는 냅다 도리질했다. 그는 곧바로 강에 나가 귀를 씻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 귀가 더럽혀졌다는 것이었다.
이게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허유가 귀를 씻은 이야기'이다. 그림 왼쪽, 물가에 주저앉은 사람이 보인다. 그가 허유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그는 손가락을 연신 귀에 갖다 댄다. 흐르는 물로 귀를 씻고 또 씻어낸다.
허유보다 더 매서운 은사(隱士)가 소부(巢父)다. 마침 소를 몰던 그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소부는 대뜸 허유를 나무랐다. "제대로 숨었으면 사람이 찾아왔겠는가. 명예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은근히 기다린 건 아닌가." 소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려다 그냥 돌아섰다.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은 물은 또한 더러울 테니 소의 입까지 더럽히기는 싫다고 했다. 오른쪽, 소에 올라탄 사람이 소부다. 그는 소가 물을 먹지 못하게 고삐를 낚아채는 시늉을 한다. 소부가 얼마나 꼿꼿한지, 소 등에 서 있는데도 흐트러짐이 없다.
허유와 소부의 고사는 옛 그림의 소재가 되기에 좋았다. 권력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제 한 몸의 청결을 오로지하는 은사는 본보기가 된다. 이 그림도 한마디로 줄이면, 누가 더 깨끗한지 내기하는 모양새다. 조선 인조 때 화원(畵員)으로 활약한 한선국(韓善國·1602∼?)의 작품이다. 그는 산등성이를 멀리 두고 폭포를 가까이 배치했는데, 바위틈에서 옆으로 뻗은 소나무를 기이하게 그려 선경(仙境)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가 때인지라 허유와 소부의 처신을 돌아본다. 정치와 권력이 더럽다고만 한다면 나랏일은 누가 맡을까. 정치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정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맞는다.
(추가-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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