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백과에서는 "탁족도(濯足圖)란 강이나 계곡의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비나 은사(隱士)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라
정의 하고, 이는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의 하나로, 동양 특유의 은일사상(隱逸思想)에 바탕을 두고 발달한 그림이다.
대개는 간소화한 자연을 배경 삼아 인물중심으로 그리고 있는데 인물은 흔히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채 다리를 꼬아
물에 담그고 있으며 더러는 한쪽에 술을 받쳐들고 서 있는 동자와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는 탁족도가
북송(北宋) 때부터 화제로서 자주 등장하였다. "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를 전후하여 얼마간 그려
졌으며 대표작으로는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李慶胤)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와 이정(李楨)이
그린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필자 미상의 《고승탁족도(高僧濯足圖)》, 그리고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의
《고사탁족도》 등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탁족도는 조선시대 여러 사람들이 즐겨 그린 소재인데, ‘탁족도’에 담긴 의미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 중에 ‘어부사(漁父辭)’의 내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왕에게 옳은 일을 고하다가 쫓겨나 한탄하는 굴원에게 배로 강을 건너 준 어부가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흐르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흐르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
라고 하며 삶의 처세를 은유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을
세상이 맑으면 갓을 쓰고 관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치고,
세상이 흐리면 흐린 물에 발이나 씻으며 은둔하며 자족하라’ 는 뜻으로 다들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조선중기 대표적인 탁족도를 그린 이경윤의 탁족도를 중심으로 살펴 본다.
이경윤(李慶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경윤의 탁족도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고사(高士)의 앉은 모습이 거의 같은 모양새입니다.
바지를 허벅지가 보이도록 훌훌 말아 올리고 발이 물에 닿을 듯 말 듯 다리를 슬쩍 꼬아 앉아서 왼손을 바위에 짚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뭔가 말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앉은 모양새는 같은데, 가슴을 풀어 제친 도포자락 사이로 볼록한 뱃살이 드러나고 얼굴 표정도 좀 더 밝은 친숙한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더위를 피해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글 정도라면 굳이 윗옷을 단정하게 입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왕 더위를 피한다면 발을 담그고 도포도 훌훌 벗어 제치는 것도 좋을 텐데, 선비 체면에 차마 그러하지는 못하고, 누가 오면
황급히 옷을 여밀 수 있게 슬쩍 도포자락을 열어서 제치는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양반들이 일반 평민들이 유독 부러운 계절이 여름철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뱅이 하나 걸치고 가슴을 훤하게 들어 내놓고 사는, 체면 따위는 전혀 필요 없이 여름한철을 지내는 상민이 부러운
계절입니다.
작품속의 가장 아랫부분에 매화꽃인 듯, 몇 송이 꽃을 피웠는데, 곧 필 듯 말 듯 꽃눈의 분홍색 색감과 새잎이 돋은 모양새와
곧게 뻗은 가지로 봐서 복숭아나무를 닮은 듯합니다.
매화가 피는 계절은 더러 눈도 내리는 아직 추위가 남은 이른 봄철이고, 복숭아꽃이 피는 계절 역시 아직 찬바람이 남은 계절이기에 옷을 풀어 제치고 탁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밑둥이 부러진 큰 고목나무는, 나뭇잎과 붉게 무리지어 가득 핀 꽃으로 봐서 배롱나무(목 백일홍)가 틀림없을 듯합니다.
배롱나무라면 삼복더위 여름 한철 내내 꽃을 피우기에, 더위를 피해 탁족하는 모습과 딱 어울리는 나무입니다.
큰 배롱나무는 탁족하는 모습과 계절적으로 잘 어울리는 사실적 표현이라면, 매화나 도화(桃花)는 선비의 고결함과 '여기가
이상세계인데 세속에 나가 뭐하리'라는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영석 노승탁족도(老僧濯足圖)
물 속에 발을 담고 무릎과 허벅지의 때를 미는 동작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매와 소박한 옷매무새가 인상적이다. 당시의 산수인물화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어 있어 세부적인 묘사와 사실감이 돋보인다.
공재 윤두서와 함께 풍속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영석의 재치있는 필치를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조영석은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인물과 산수 등에서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작가 미상 삼복탁족도(三伏濯足圖)
친구 셋이서, 홀랑 벗은 둘에 내숭 떠는 하나. 솥단지를 걸어 놓았는데 그안에는 뭐가 끓고 있을까...
무릇 강가에 나와 하는 놀이는 더위도 식히고 닭 백숙이라도 해서 먹는 천렵이지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태종대
조선시대 선비들도 여름철에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더위를 잊었다 화면 중앙 아래쪽에는 넓적한 바위 위에 갓을 쓴
선비가 종이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맞은편 바위에는 웃옷을 벗고 있는 사람, 바지만 걷어 올린 채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 이들을 서서 지켜보는 시종들이 보인다. 화면 중앙 하단부에 절단된 바위를 배치함으로써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이 강세황으로 추측되는 인물과 함께 태종대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낸다
김홍도-관산탁족도(觀山濯足圖)
바위 낭떠러지에 나무가 무성하고 위태로운 판석교(板石橋)가 놓인 깊은 산중의 폭포 위에서 한 고사(高士)가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구학(邱壑)에 탐닉한 채 한없이 앉아 있다.
하얗게 부서지며 쏟아지는 폭포물에 마음과 몸을 씻어 더 이상의 진속기(塵俗氣)가 없고자 함일 것이다.
자연을 벗삼으며 탈속하게 살고자 했던 문사(文士)의 한 전형적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매우 신속한 필치로 몇 숨에 끝낸 듯 묘사가 소략(疏略)하고 필선도 조방(粗放)하다.
채색도 그저 볓번의 성근 붓질로 분위기만 잡는 것으로 그쳤다. 한유(韓愈)가 이원(李原)을 전송하며 읊었던 시귀를
유려한 행서로 써넣어 구성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알맞은 배합을 이루었다.
짙은 나무 밑에 앉아 해가 지고
맑은 샘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하네
만년에 자주 사용한 ‘丹邱’의 호를 쓰고, ‘士能’의 작은 주문인(朱文印)과 ‘一卷石山房’의 세장한 백문(白文)
유인(遊印)을 찍었다. 중앙에 접혔던 자국이 있어 본래는 화첩에 있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족자로 표구되어 <석양귀소(夕陽歸巢)> 쌍폭합상(雙幅合箱)되어 있으며, 상자 겉면에는 1932년
이한복(李漢福)이 쓴 ‘단원선생산수정(檀園先生山水幀)’의 표제가 있다.
[출처] 김홍도-관산탁족도(觀山濯足圖)|작성자 하니
탁족도(濯足圖) 그저 이 삼복더위에 더위를 피하는 그림으로 바라보는 것 하나로도 족하지요.
작품에서처럼 굳이 옷을 벗지 않고서도,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계곡물에 발만 담고 있어도 등골이 시원해지지
않나요? 거기에다가 동자가 따라주는 술 한 잔이 있는데, 그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이 흐르는 물에 갓끈을 씻어 출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발을 담그고 아직 숨어 지내야 하는지,
이런 저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이 더위에 발을 담그고 잠시 세상살이 잊고 지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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