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산수화
- 작가 : 이불해(李不害)
제목 : 예장소요도(曳杖逍遙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비단에 담채 186 x 135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불해는 조선시대 중기의 선비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신상에 대하여는 밝혀진 사실이 적다.
자(字)가 태수(太綏)라는 것과 정호음(鄭澔陰)의 시에 이르기를
삼우(三友) 즉 山水. 난죽(蘭竹). 금주(琴酒)를 잘한 인물로 전해온다.
실제로 현존하는 작품이 드물어. 그의 회화 수준이나 화풍은 예장소요도에 의존하여 왔다.
아주 작은 소품이긴 하지만. 水墨과 담청(淡靑). 필치가 간결하고 깔끔한 가작(佳作)이다.
또한 작은 화면이지만 근경의 석교(石橋)와 나무. 고사(高士)등 경물이 배치된 언덕에서 바라본 원산의 안개 처리는.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준다.
언덕 위의 고사(高士) 좌우에 배치된 소략한 나무들의 표현은 안견화풍의 변모로 여겨진다.
즉.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사시팔경도>에 보이는 잡목의 수지법(樹枝法)을 연상케 한다.
개활함은 안개에 싸인 원산에서. 그리고 그 표현은 남송대 화풍을 반영한 것이다.
호연지기 속에있는 지팡이를 의존한 고사 인물의 묘사는 중기에 유행하는 절파계(浙派系) 화법의 냄새도 풍긴다.
이처럼 예장소요도에는 초기부터 이어온 여러 화풍과 새로운 양식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으며. 이는 중기 회화 경향의
한 단면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 외에 이불해의 것으로 전칭해 오는 몇 점의 산수도들은 중기에 두드러졌던
절파계 화풍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다.
작가 : 이경윤(李慶胤)
제목 :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언제 : 16세기 말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911 x 595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경윤은 성종(成宗)의 제11자인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종증손(從曾孫)으로 16세기 후반의 화단(畵壇)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인(士人) 화가이다.
그는 특히 산수와 인물을 잘 그렸다고 전하며 아우 이영윤(李英胤)과 그의 아들 이징(李澄) 역시 일가를 이루었다.
산수인물도는 동자를 거느린 두 노인이 담소하고 있는 장면을 넓은 산수를 배경으로 그린 대경(大景) 산수인물화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전경은 담채와 농묵으로 처리하고 상단 전체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원산과 그 아래 마을은 담묵으로
처리하여 거리감이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공간이 크게 확대되어 있고 산이나 바위는 흑백의 대비가. 현저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스듬하게 솟은 산들은 절파계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고담(枯淡)한 배경 묘사와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자세 암벽 뒤에 그려진 학에 의하여 청정한 분위기가 감돈다.
작가 : 이경윤(李慶胤)
제목 : 시주도(詩酒圖)
언제 : 16세기 말
재료 : 모시에 수묵 233 x 225 mm
소장 : 호림미술관
해설 : 이 시주도는 산수인물화첩의 첫면에 실려 있으며 다른 8엽과 더불어 비록 관서(款署)나 도인(圖印)은 없지만 이경윤이 생존해 있던 시기에 쓴 찬문(贊文)이 적혀 있고 또 화격(畵格)이 높은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진필로 간주된다.
동자가 허리를 굻혀 받쳐 들고 있는 술 항아리를 돈(墩)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는 학창의 차림의 선비를 묘사한 이 그림에는 간이당(簡易堂) 최립이 1598년 겨울에 달필로 쓴 발문과 찬시가 배경 없이 비어있는 화면의 여백을 빽빽이 채우며 적혀있다.
발문을 보면 이 시주도를 포함한 9점의 그림들이 흩어져 있다가 성천부사(成川府使)를 지낸 유학자(儒學者) 홍준(洪遵)에 의해 수집되었다는 사실과 그려진 인물들이 비범하고 속기(俗氣)가 없어 보여 작가인 이경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 인물들 속에 혹시 자기도 모르게 표현된 작가 자신의 모습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의 자연스런 모습과 단아한 표정도 훌륭하지만 옷 주름의 필선 또한 매우 능숙하고 유연하다. 의습선의 필치는 굵고 가는 선폭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오도자(吳道子)계열의 전통을 바탕으로 전개된 남송대 마원 이래의 궐두묘(獗頭描)를 받아들여 이를 보다 강하고 세련되게 사용하였다.
그리고 접힌주름 부분에 보이는 Z 자 모양의 전광형(電光形) 필세는 오위(吳偉)를 비롯한 후기 절파계의 화가들이 즐겨
구사하던 것으로 이그림의 화풍상의 연원을 말해 주기도 한다. 앉아있는 선비의 오른쪽 하체 부분에 보이는 먹선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져 있어.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높은 격조를 보이면서 그의 다른 전칭작들을 비교 검토하는 좋은 기준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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