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산수화(2)

바람아님 2013. 8. 20. 20:06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산수화(2)

 

 

 

 

 

    작가 : 이경윤(李慶胤)

     

    제목 : 고사탁족도(高士濯足도)

    언제 : 16세기 말

    재료 : 화첩 비단에 담채 278 x 191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경윤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산수화 중에는 소경(小景) 산수인물화 계통의 그림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인 이 고사탁

    족도는 낙파연주첩(駱坡聯珠帖) 이라고 표제(表題)된 화첩에 속해 있던 것이다. 나무 아래의 물가에 앉은 선비가 술주전자를

    받쳐 든 시동을 바라보며.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런데 가벼운 여행용 봇짐을 등에 메고 술 주전자를 든 동자의 모습이라든가 앞가슴을 풀어 헤친 선비의 모양새 등으로 보아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나 흐린 물에 발을 씻었다는 은일파 초탈의 심회를 담은것이 아니라 먼 여행에서 돌아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쌓인 먼지를 씻으며 술을 대접 받았다는 선화유사(宣和遺事)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구도는 수하(樹下)인물도 계열의 오랜 전통을 따랐으나 토파와 냇돌, 의습선 등에는 절파풍(浙派風)이 완연하다. 단아하게

    생긴 선비의 얼굴 모습은 호림(湖林)미술과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산수인물도들의 소사들고 닮아 보인다.

     

    그러나 옷주름의 필선은 그들보다 경직된 느낌을 준다. 화면의 오른편 상반부의 깁 바탕이 탈손되어 있는 등 보존 상태는

    좋지 않으나. 나뭇가지와 인물의 의복 등에는 담채의 색조가 비교적 곱게 남아 있으며 전반적으로 깔끔한 분위기가 감돈다.

     

     

     

     

     

     

     

     

     

     

    작가 : 이정(李楨)

    제목 : 산수도(山水圖)12면 중4면

    언제 : 17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 191 x 235 mm ~ 194 x 255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정은 30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중의 한사람이다.

    허균(許筠)이 쓴 이정애사에 의하면 그는 이배련(李陪蓮)을 할아버지로 이숭효(李嵩孝)를 아버지로 해서 태어났으나.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집에서 그림공부를 했다고 한다.

     

    5살 때 승형(僧形)을 그렸으며 10세에 이미 대성하여 산수, 인물, 불화 등에 모두 능통했고 1606년에 명사(明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문인화가 주지번(朱之蕃)으로 부터는 천고에 최성(最盛)이고 해내(海內)에 짝이드물다"는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12엽으로 이우어진 이 화첩에는 그의 이러한 천재적 면모와 기질이 잘 담겨 있다. 그중 4엽만이 소개되었는데,  모두

    방일(放逸)한 발묵(潑墨)과 파묵(破墨)의 묘취(妙趣)가 넘치는 일품들이다. 번지듯 스며있는 담묵의 바탕에 거칠고 대담한

    묵찰(墨擦)을 가하여 화면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특히 2.3엽에 보이는 지극히 종일하고 과격한 농묵의 붓질은 마치

    파격적인 일품양식의 선종화(禪宗畵)를 대하는 듯하다.

     

    이렇듯 대담한 성격의 묵법은 다음 <산수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절파계의 조야(粗野)한 필묵법이 더욱 방일하게 발전된

    것으로 여기에 남송대의 선승화가(禪僧畵家) 목계(牧谿)와 옥간(玉澗)의 산수화풍과 선종인물화의 호방한 양식 그리고

    그의 천재적이고 방외인적 기질 등이 가미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흠(申欽)이 이정의 화풍에 대해 인공(人工)의 전륜함을

    넘어 신품(神品)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 평도 이정의 묵묘 솜씨를 두고 했던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 4번째 그림에 나타난 풍경의 일각이 다분히 실경묘사적이고, 특히 산새의 표현과 송림에 찍힌 米點의 표현은 후에

    謙齊가 흔히 사용하였던 표현방법으로 이조 회화를 통털어 처음으로 등장하는 米點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송림의 표현이야말로 한국적 산수의 실경 묘사에서 나오는 것으로 송림을 표현하는 기법은 송엽을 눈에 보이는 대로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간 표현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