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02.25 02:50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건축은 공간의 예술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예술이다. 교회가 나이트클럽이 되고, 공장이 전시장이 되고, 감옥이 난민 쉼터가 된다. 건물을 처음 올린 때의 용도와 기능이 유지되는 기간(생애주기)이 점점 짧아지는 오늘날, 시간 속의 건축은 ‘무엇’이 아닌 ‘어떤’ 것을 계획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혜화문에서 이어지는 성곽 내측에 1941년 지은 구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이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건축가 최욱)로 리노베이션됐다. 일제 강점기 개인주택이었다가 지난 30여 년간 시장공관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성벽을 담 삼아 성 밖을 바라보는 건물 배치는 그대로 두고, 길에서 두 개 층 높이를 올라 마당으로 오르는 입구를 새로 정비했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며 증·개축됐던 요소를 지워내고 그간 숨어 있던 원형 구조를 선택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해체, 재구축했다.
서울에는 조선시대 이래 600년 동안 서울의 성장과 변화를 겪어낸 대표적인 건축물이 있다. 한양도성이다. 길이가 18㎞를 넘고 서울시 5개 자치구를 통과한다. 성문은 도로가 나면서 허물어지고, 성돌은 주변 건물의 축대로 유실되면서 도시의 역사를 제 몸에 새기고 있다. 2012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도 지정됐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현재 보존관리계획을 수립·시행 중이다. 한양 도성은 단일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성곽에 응축된 시간을 현재와 연결하는 건축의 집합이기도 하다.
건축가가 특유의 정교한 손길로 새로 마감한 부분과 옛집의 기존 마감을 철거하고 드러낸 목조 지붕틀, 바닥과 벽의 거친 원형 구조가 어우러지며 깊이 있는 공간이 연출됐다. 특히 전시의 일부인 듯 뚫린 창을 통해 이웃 성곽마을 풍경이 들어오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장소에 층층이 쌓인 역사의 기억과 현재의 풍경이 연결되고 성곽과 나란히 있을 뿐 단절됐던 옛집이 도성의 일부로, 시간의 박물관으로 완성된다. 건축가의 일이란 역사로부터 뿌리를 찾아 미래를 향해 새 생명을 내는 것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올해도 한양도성 보존관리 원칙과 계획에 따라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남산 회현자락 구간에 2018년 완공을 목표로 발굴 유구 보존, 지속적인 조사·연구, 일반인 관람이 가능한 현장 유적박물관 계획안을 공모 중이다. 도성 안팎의 주거지를 전면 재개발하는 대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성곽마을 보전관리계획도 중요한 프로젝트다. 기억만 남은 성곽의 멸실 구간에 대해서도 순성길을 복원하는 장기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의 현재와 과거를 꿰는 의미심장한 기획이다.
지도를 놓고 100년 후의 서울을 상상한다. 여전히 그 속에 생생하게 있을 한양도성도 떠올린다. 시간의 건축은 눈앞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오래 지켜야 할 가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 미래를 향한 공감과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한양도성 축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재원 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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