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집짓기] ⑪되돌아본 우리의 옛집(상)
20여년 전에 땅 고르고 터잡는 얘기로 책을 한권 펴냈다. 책 말미에 필자가 살던 경기 양평 무너미마을 이주기를 썼다. 그 책의 반향으로 내 글을 추적해 같은 동네로 10여 가구가 이사왔다. 지금은 배우 이영애씨가 살면서 유명해진 그 마을이다.
그 시절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해마다 ‘아버지와 함께 캠핑’ 행사가 열렸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버지끼리 모여 막걸리를 마시다가 그 동네로 이사온 사연을 얘기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필자가 그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사연을 나누던 이웃들에게 진 마음의 빚으로 인해 8년을 그 마을에 눌러 앉아 있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잠시 서울로 나왔다가 다시 경기 이천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두번째 집을 지었고 가평으로 오면서 세번째 집을 지었다. 내 집을 세번 지어보고 남이 살 집을 그보다 백배는 더 많이 지어주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집은 과연 우리가 살던 집인가.’
■한옥과 아파트, 대문 여는 방향 달라
땅을 고르고 터잡는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만 접고 집짓는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 문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필자는 올해 60고개 문턱에 올라선 ‘58년 개띠’다. 15년간 집 공부를 하고 20년 가까이 ‘집장사’를 하면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파트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은 이 의문에서 열외다. 한번이라도 전통 한옥에 살아봤던 사람이라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구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가.
아파트 구조에서 내가 가장 생경했던 부분은 현관이다. 필자의 시골집은 전통 기와집이었지만 본채만 있고 행랑채는 없었다. 그래서 대문이 어설프기는 했지만, 분명한 점은 대문이 안으로 열렸다는 것이다. 지금 철문으로 바뀐 시골집 대문도 여전히 안으로 열린다. 양옥으로 바뀐 대부분의 도시 단독주택도 대문은 안으로 열린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 한옥마을, 하회마을, 양동마을을 가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현관문은 밖으로 열린다. 단지 형태로 국내 처음 건설된 1960년대 서울 마포아파트는 10평대로 한 뼘의 공간이 아쉬운 구조였다.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려고 하다 보니 현관문은 신발장과 부딪치지 않게 밖으로 열리도록 했고, 그후 모든 아파트의 표준이 됐다. 순전히 공간적인 이유에서 시작됐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방향이 반대로 바뀐 것은 우리 주거 문화의 본질을 바꾸는 중요한 모멘텀이 됐다.
■아파트는 손님 아닌 주인만 고려
모든 문은 여는 사람이 편한-당기는 쪽이 아니라 미는-방향으로 열리게 돼 있다. 따라서 문을 여는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여는 방향이 결정된다. 단독주택 대문은 안에서 잠그도록 돼 있지만 일단 주인이 걸쇠를 풀어주면 밖에 있는 사람이 편하게 밀고 들어오게 돼 있다. 손님을 먼저 배려하는 구조다.
반면 아파트 현관문은 잠금장치를 푸는 것도 그렇고, 문을 여는 것도 안에서 밀어줘야 한다. 잠금을 풀고 여는 모든 과정이 안쪽 주인에게 전권이 주어져 있다. 행여 밖에서 문을 확 잡아당기지 못하게 반 뼘만 열리는 걸쇠가 이중으로 걸려 있어 바깥 손님은 주인이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한다. 문이 닫히면서 마음도 닫혔다.
이런 구조가 현대식 단독주택에도 그대로 옮겨왔다. 전통 한옥에는 없던 현관이 단독주택에 적용되다보니 모든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다름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내부는 현관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고, 한옥처럼 방과 마루에서 마당으로 바로 내려설 수 없다. 현관이 없는 단독주택을 지어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건축주들의 완강한 저항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방범 때문에 불안해서 안된다는 이유였다.
■“공간 효율성보다 사람이 먼저”
그러면 본인이 살던 집에는 왜 시도하지 못했냐고 묻는다. 집은 팔 때를 생각하고 지어야 한다. 적어도 상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를 시도한 집은 대대로 물려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지을 수 없다. 아직까지는 필자도 시행 착오를 겪는 과정이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정착할 집은 현관을 없앨 생각이다. 한옥이 그랬던 것처럼, 방에서 마당으로 바로 내려설 수 있는 그런 집을 지으려 한다.
방문은 현관과 반대 방향으로 열린다. 전통 한옥은 바깥으로 열리는데 아파트는 안쪽으로 열린다. 대문은 공적인 공간이고 방문은 사적인 공간이다. 한옥에서는 문을 밀 수 있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 분명한 논리가 정립돼 있다. 아파트나 양옥은 이런 개념이 없다. 오로지 공간적인 효율성에 따른다.
문을 밀고 여는 방향은 여닫이문의 주도권을 누구에게 중심을 두고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살던 옛집은 이런 점에 관한 생각이 명료했다. 아파트와 양옥은 공간의 효율성이 우선이고 사람은 뒷전이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집을 짓고자 한다면 이 단순한 관습을 깨는 모험을 먼저 시도해볼 것을 권한다. 집을 지을 기회가 평생 단 한번뿐이고, 마지막까지 살고자 하는 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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