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38] 초승달처럼 시리구나, 고단한 民草들의 삶이여

바람아님 2013. 8. 29. 10:39

(출처-조선일보 2012.12.23  손철주 미술평론가)


'돌아온 행상' - 김홍도 그림, 비단에 수묵 담채, 73×37㎝, 18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래 사진들은 그림의 인물 부분을 
 번호 순으로 확대한 것.
   화면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더듬어 보자. 초승달이 나뭇가지로 내려앉는 음력
   초사나흘 무렵의 밤이다. 헐벗은 나무들이 어지러이 늘어섰고 등성이에 이내가 끼어 먼 곳이 흐릿한
   산골, 니은 자로 굽은 길에 소와 말이 앞장서 내려온다. 길마 위에 얹힌 짐바리가 새끼로 야무지게 묶여
   있다. 우마(牛馬) 바로 뒤에 사내<①>가 따른다. 흑립(黑笠)을 쓰고 남바위를 둘렀다. 날이 저물어
   사느랗고 등짐이 무거워 그의 몸은 자꾸 기운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두 사람이 더 있다. 그들은 보일락 말락 한다. 패랭이를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곰방대를 문 중년<②>은 우마 곁에 상반신만 나온다. 키보다 큰 짐을 지고 소매에 두 손을 집어넣은
   청년<③>은 뚝 떨어져서 걷는다. 세 사람은 다들 어깨가 처졌다. 본새로 짐작하건대 도붓장수일 성싶다.
   장터를 돌고 도느라 그들은 내내 힘들었다. 밤중이 돼서야 겨우 아랫마을로 들어선 참이다. 고생스러운
   장삿길이지만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을 사람들이다. 꾸역꾸역 살아가는 서민의 나날이 나목(裸木)처럼
  시린 풍속화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가 젊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역량이 넘쳤는지
   작품을 빈틈없이 꽉 채웠다. 단원을 가르친 화가 강세황은 이 그림을 평하면서 '닭들이 다투어 짖고,
   소와 말을 몰아 서리 밟고 바람 부딪치며 나아가는' 새벽길 풍경인 것처럼 썼다. 하지만 그는 초승달
   모양을 잘못 봤다. 뜨는 달이 아니라 지는 달이니 밤의 정경이 맞는다.


 




바람 속에 끼니를 때우고 이슬 맞으며 잠을 자는 게 저들의 하루다. 따스운 저녁밥이 있는 내 집이 그립다.  
마침 18세기 문인 이규상이 시(詩)로 위로한다. 
     '밥그릇 솥에 넣어 불에 조금 데운 뒤
    등잔 아래 아내는  팔을 베고 조는구나
    닭이 울 때 먼 장터로 나간 남편   
    돌아와선 말하겠지, 달이 높이 걸렸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