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지 몇 해가 지나니 수시로 울리던 전화벨이 점차 잠잠해진다. 어떤 날에는 종일 한 번도 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 하루는 전화가 울리는데 내가 입력해둔 번호는 아니었다. "또 이상한 전화가 왔나" 하고 무심히 받았는데 "선생님! 맞으시죠?" 하는 소리가 들렸다. 30여년 전에 가르친 학생이다. 그는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는 "여태 선생님 생각은 하면서도 전화 한 번 못 드렸다"면서 "지금 인천에 살고 있는데 시장 가는 길에 꽃게를 사서 보낼 테니 버스터미널에 가서 찾아가세요"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당장 자기 자식 잘 봐달라고 선물을 주기는 해도, 졸업한 지 몇십 년이나 지난 옛 선생님에게 선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찾아온 선물 상자를 보며 멍한 얼굴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교직 생활을 통해 수많은 학생을 사회로 진출시켰다. 그런데 학교 생활이 모범적이던 학생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를 많이 먹이고 사고도 많이 낸 학생들이 주로 기억나고, 그들의 이후 소식이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 당시 내가 맡은 3학년 반에는 다들 눈살을 찌푸리는 이른바 '문제 학생'이 유독 많았다. 나는 속으로는 "담임 복도 지독히 없다. 왜 문제 반만 연속으로 맡는 걸까"라며 혼자 혀를 찼다.
학년 초, 예상대로 우리 반의 한 학생이 반에서뿐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특별한 이유 없이 반 학생들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킬 목적인지 손에 수건을 둘둘 감아 유리창을 깨곤 하였다. 이렇게 몇 달이 흘러 중간고사를 치른 후였다. 그 학생이 아무 설명도 없이 일주일이나 학교에 오지 않아 집으로 찾아갔다. 부모님은 "우리도 내놓은 자식"이라며 "모른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을 불러 수소문하듯 물으니 그 학생은 산속에서 움막을 치고 산다고 했다. 게다가 등·하굣길에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다른 학생들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게 잡아두고 있었다. 내가 움막으로 찾아가자 바위를 굴리고 돌을 던지며 위협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끝까지 움막까지 들어가 그 아이를 설득했고, 그는 나중에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한창 성장기의 청소년은 앞으로 어떻게 클지 알기 어렵다. 아무리 교사여도 성공이나 실패를 가늠할 수 없다. 나도 교사 경력이 쌓여가면서 학생들의 작은 행동 하나를 보고 그를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거듭 깨닫곤 했다. 흔히 자식 키우기를 농사에 비유한다. 농사짓다 보면 잘 갈무리해 알곡식이라고 정성스레 심은 것은 싹조차 나지 않고, 여물지 못해 무심코 마당가에 버린 쭉정이가 비가 오고 난 며칠 후 경이롭게도 싱싱하게 자라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교사도 지혜로운 농부처럼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학생 전체를 평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에게까지 나의 어리석은 판단을 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과 문화]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선물 (0) | 2017.03.06 |
---|---|
[삶과 문화] 논리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가 (0) | 2017.03.05 |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생명의 비자 (0) | 2017.03.01 |
[김월회 칼럼] 3.1절 그리고 '한국인문대전' (0) | 2017.02.28 |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슬픈 노래들 (0) | 2017.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