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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생명의 비자

바람아님 2017. 3. 1. 23:26
세계일보 2017.03.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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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교관 스기하라 지우네는 동방의 쉰들러로 불리는 분입니다. 정통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던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대입 시험장에서 백지 답안을 제출합니다.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끊자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학으로 외교관에 입문합니다. 그가 리투아니아 영사대리로 있던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1940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유대인 난민들이 스기하라가 있던 일본 영사관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새벽부터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살육에서 구해주기를 눈물로 청원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해외로 도망가게 해주지 않으면 그들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스기하라가 본국으로 거듭 요청했지만 독일의 동맹국이던 일본 정부는 비자 발급을 불허했습니다.


스기하라는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본국의 명령을 거스르고 비자를 직접 발급하기 시작했어요. 아내 사치코도 옆에서 수기(手記)로 발급을 도왔어요. 부부는 28일 동안 하루 20시간씩 도장을 찍어 비자를 발급해주었습니다. 본국 외무성의 퇴거 명령이 떨어져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는 도중에도 호텔에서까지 비자를 작성한 뒤 열차에서 비자 서류뭉치와 도장을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그가 발급한 비자 수는 공식 기록에 남은 것만 2139장에 이릅니다. 기록에 남지 않은 비자 등을 감안하면 그의 의로운 행동으로 해외로 탈출해 목숨을 건진 유대인은 6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스기하라는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심한 냉대를 받습니다. 외무성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가난하게 만년을 보냈어요. 스기하라의 선행은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훗날 그의 도움으로 살아난 유대인들이 그의 존재를 추적한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이들 유대인은 예루살렘 언덕에 그를 기리를 비석을 세웠어요. 병환을 앓고 있는 고령의 스기하라를 대신해 그의 아내와 네 아들이 참가했습니다. 아들들은 병상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생명의 비자’ 이야기는 ‘인간다움’이 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선행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영원히 전해질 있을 것입니다. 한때나마 그와 동시대에 지구별에서 함께 호흡했다는 사실에 참 행복합니다.


배연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