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17] 뉴욕의 향기를 디자인하다

바람아님 2017. 4. 1. 11:56

(조선일보 2017.04.01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산업디자인)


냄새는 감정과 기억을 이끌어내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세상에는 약 40만 가지의 냄새가 있는데, 

그중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건 1만 가지 정도이다. 

독특한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는 향료를 알코올처럼 휘발성이 강한 액체에 풀어서 만든다. 

고대부터 종교의식에서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장미, 재스민 등 식물성 향수를 사용했다. 

머스크(사향) 같은 천연 동물성 향료로 만드는 페로몬 향수는 이성을 유혹하는 사랑의 묘약으로 쓰인다.


본드 넘버 나인의 ‘앤디 워홀 유니언 스퀘어’ 향수. 여성용. 은방울꽃+프리지어+머스크 향.

본드 넘버 나인의 ‘앤디 워홀 유니언 스퀘어’ 향수. 

여성용. 은방울꽃+프리지어+머스크 향.


본드 넘버 나인(Bond No. 9)은 뉴욕을 대표하는 향수 브랜드이다. 

프랑스의 랑콤에서 여성 조향사로 실력과 명성을 쌓은 로리스 라메

(Laurice Rahmé)는 2003년 뉴욕에서 향수 회사를 차렸다. 

'본드가(街) 9번지'라는 회사 이름은 처음 개장한 매장의 주소에서 유래됐다. 

처음 출시한 16가지 향수의 이름을 맨해튼, 코니아일랜드 등 뉴욕의 동네, 

해변, 명소에서 따와 '이웃 향수들(neighborhood fragrances)'이라고도 한다. 

향수마다 제각기 다른 이름과 향기를 갖고 있지만, 병의 디자인은 별 모양의 투명한 

오각형으로 통일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생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냄새는 뉴욕의 초봄 향기이다"라고 했던 데 

착안하여 2008년 '앤디 워홀 유니언 스퀘어 향수'를 개발했다. 

워홀의 작품처럼 새봄의 상큼한 신록과 꽃향기가 물씬 풍기는 유니언 스퀘어 향수는 향수계의 오스카상인 'FiFi 어워드'에서

'2009년 올해의 향수 상'을 받았다. 

2011년부터 뉴욕 주와 협력하여 'I ♥ NY' 컬렉션을 개발했으며, 이웃 향수도 계속 늘어나 60여 종이 되었다.


본드 넘버 나인은 미국의 최고급 백화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유서 깊은 명품들이 겨루는 

전 세계 향수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발상과 개성 있는 디자인 역량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