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22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울루와 나무 받침,
칼날 길이: 15㎝, 가격: 20달러(약 2만2700원)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한 특산품 매장에 들어서니 특이한 칼이 눈길을 끈다.
예리하게 날이 선 부채꼴 스테인리스 스틸 칼날 위에 나무 손잡이를
수직 방향으로 끼워 만든 독특한 구조이다.
손잡이가 칼날 뒤에 수평으로 끼워져 있는 보통 칼과는 전혀 달라 호기심을 끈다.
손으로 잡아보니 나무 손잡이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고 가벼워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무엇을 자르거나 다지기에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깨로 누르는 힘이 칼날에 집중되므로 큰 생선이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썰고 다듬기도 편할 것 같다.
이 칼의 이름인 '울루(Ulu)'는 에스키모 원주민의 언어로 '여성의 칼'이라는 뜻이다.
남자가 사냥이나 낚시를 하는 동안 집에서 바느질과 조리 등 가사를 전담하던 주부가 주로 사용했던 데서 유래하였다.
에스키모 마을 어디서나 울루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사냥해온 연어, 물개, 고래, 순록 등 먹을거리를 조리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용도에 따라 칼날의 길이가 달라 바느질용은 5㎝, 일반 가사용은 15㎝ 정도이다.
울루는 5000년 전쯤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기시대에는 단단한 돌을 갈아 날을 세운 다음 다공질의 화산암 손잡이에 끼워 만들었다.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칼날이 금속으로 바뀌었지만 디자인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울루 같은 손 도구들은 한 지역의 지정학적 요소와 생활양식에 따라 오랜 기간 진화해 온
'토속적 디자인'(vernacular design)의 특성을 고루 갖고 있다.
에스키모 선조의 지혜가 스며든 울루는 요즘도 알래스카 특산물인 연어를 다듬는 데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치즈, 고기 등을 저미거나 견과류를 잘게 부수기도 좋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외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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