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지로 보이니?” 죽음을 눈앞에 둔 시인 노천명이 치료비를 건네는 친구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노천명은 곧 쓰러질지언정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사람이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그는 대표작 ‘사슴’에서도 스스로를 슬픈 짐승으로 표현했다.
노천명은 1912년 9월1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기선’이었으나 어려서 홍역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천명(天
命)’으로 개명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7세 때 상경해 진명보통학교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남다른
문재(文才)를 보여 대학 3학년 때 ‘신동아’에 시 ‘밤의 찬미’, 수필 ‘신록’, 소설 ‘닭쫓던 개’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등단했다.
졸업 뒤엔 왕성한 시작(詩作)을 통해 당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작 ‘사슴’은 1938년에 49편을 묶어 내놓은
시집의 한 편이었다.
그의 작품을 꿰뚫는 키워드는 ‘고독과 슬픔’이었다. 삶의 본질에 대한 응시와 성찰로 당대 여류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키워드는 현실을 초연한 비(非)정치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뒤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일제
말기 ‘친일(親日)’과 6·25전쟁 중의 좌파 문학가동맹에 참여한 ‘부역(附逆)’이라는 ‘주홍글씨’도 새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그는 1957년 3월, 대학 강의를 위해 이동하다 길에서 쓰러진 뒤 9개월 만에 눈을 감았다. 병명은 재생불능성 빈혈이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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