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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기업의 무덤이 되어가는 이유

바람아님 2017. 5. 1. 08:04
[중앙선데이] 입력 2017.04.30 01:39

모바일 혁명, SUV 수요 급등 등 중국 트렌드 변화에 대응 못 해
중국어로 치고 받을 전문가 키워 향후 30년 먹고 살 씨앗 뿌려야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지난 60여년을 돌아보면 자동차와 정보기술(IT)이 센 나라가 경제가 강한 나라였다. 1950~70년대 미국, 80년대의 일본, 1990~2000년대의 한국이 그랬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와 IT시장이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2800만 대의 자동차가 팔려 2위인 미국의 1750만 대보다 1050만 대나 더 팔렸다. 중국의 모바일 가입자는 13억2000만 명으로 미국의 3억8000만 명의 3.5배에 달하고 있다. 작년 중국은 20억5000만 대의 모바일 폰을 만들었다.
 
지금 자동차와 스마트폰의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의 추락이 심각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의 점유율이 2014년 10%대에서 올해 5%대로 추락했다. 1위였던 한국대표 스마트폰 회사의 중국시장 점유율도 5%대로 6위권으로 추락했다. 중국에서 잘나가던 한국기업들이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었다. 중국이 이젠 한국기업의 시장이 아니라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자동차와 스마트폰의 부진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 때문이다.
 
중국 3,4선 도시(인구 300~500만 명의 중소도시)의 소비패턴의 변화,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이 바꾼 중국의 디지털 경제의 위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800만 대의 중국 자동차소비 중 SUV차량이 890만 대나 된다. 2억6000만명의 중국 농민공들이 1, 2선 도시에서 돈 벌어 농촌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3, 4선 도시로 몰려갔다. 덕분에 3, 4선도시의 집값이 속등하고 SUV 소비가 급증했다. 3, 4선도시의 도로 환경상 세단보다 SUV의 선호도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두 자녀 출산을 허용하면서 부모와 2명의 자녀, 그리고 4명의 조부모라는 ‘4+2+2’의 가족구조가 6~7인승 SUV의 수요 급증을 불러왔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회사들은 이런 트렌드를 놓쳤다.
 
 
사드 보복보다 무서운 중국기업의 굴기
중국에선 뭐든 간에 13억2000만 대의 휴대전화 가입자의 눈높이에 못 맞추면 한방에 훅 간다. 공유경제의 대명사인 우버가 중국에서 망해서 중국의 디디추싱(滴滴出行)에 지분을 넘기고 물러났다. 지금 세계 공유경제의 메카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공산주의국가 중국의 공유경제, 디지털경제를 무섭게 봐야 한다.
 
중국 백화점 등의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은 매년 10%이상 줄어드는데도 중국 전체 소비는 10%대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선 구경만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한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출은 줄고 있지만 온라인 매출이 30~40%증가한다. 이젠 유통과 온라인을 모르면 더 이상 중국에서 사업하면 안 된다. 그간 중국에서 잘나갔던 한국의 패션과 유통점들이 줄줄이 문 닫고 철수하고 있다. 전체인구의 43%에 불과한 20~30대들이 온라인 소비의 75%를 차지한다. 중국의 2030들이 중국 소비를 좌우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중국 2030들의 온라인소비 패턴을 잘 몰랐다.
 
한국기업들의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을 사드 때문이라고 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은’ 중국 기업의 무서운 굴기가 정답이다. 전 세계 모든 제조업에서 중국이 손댔다 하면 짧으면 5년, 길면 10년 안에 모조리 거덜났다.
 
4차 산업혁명, 한국은 출발부터 늦었다. 뒷북치며 해봐야 돈만 쓰고 헛고생한다. 디지털·바이오·스마트팩토리 중 한국이 강한 것만 선별해서 집중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반도체를 보는 혜안이 30여 년 만에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고 손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국은 반도체처럼 향후 30년간 먹고 살 신수종산업의 씨를 제대로 뿌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입으로만 떠들고 공약으로만 내세우지 말고 미국과 중국, 독일과 일본이 하지 않는 것, 특히 중국이 못하는 것에 주력해야 성공한다. 지금 한국은 반도체를 빼고 제조업에서 중국보다 잘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미 전기차·2차전지·드론 산업의 세계 최대 시장,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당황스럽다. 대국이라고 하는 중국이 이렇게 째째하냐고 비난하지만 지금 한국이 당하고 있는 여행객 통제, 무역규제, 불매운동 등은 중국이 그간 일본·대만·홍콩 등의 주변국과 분쟁에서 매뉴얼처럼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수단일 뿐이다. 단지 우리가 중국 연구를 제대로 안 해서 몰랐을 뿐이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긴다. 한국 수출의 3분의 1, 무역흑자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한다. 한국 인구의 30배, 영토로는 100배 가까이되는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 본토에서 공부한 진짜 중국통 박사가 단 10명이라도 있는 한국의 연구기관이 한 개라도 있을까? 중국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을 얻어야 한다. 대중국전략 제대로 짜고 대응해야 한국이 산다.
 
 
미국에 기댄 정책으로는 한중관계 못 풀어
오징어가 지천으로 널린 동해바다지만 바닷물의 온도가 5도만 바뀌어도 어종이 싹 다 바뀐다. 오징어는 한 마리도 없고 꽁치가 판을 친다. 그물을 바꾸지 않으면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다. 중국에서 트렌드를 잘못 읽으면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국의 기업이든, 정부든, 정당이든 간에 중국어도 안 되고, 중국 본토에서 살아본 적도, 공부한 적도, 일 해본 적도 없는 중국 전문가들로 꾸린 팀이 만든 전략으로는 성공 못한다. 중국 측과 중국어로 치고 받을 수 있는 진짜 본토 출신 중국통들로 제대로 팀 짜고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 기댄 한국의 대중국문제 해법은 환상이다. 이젠 중국이 미국의 말을 들을 태도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리고 중국은 미·중관계와 한·중관계는 따로 국밥이라는 식이다. 미국에 묻어가서 꼬인 한·중관계를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다. 외교는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지 남에게 업혀서 하는 것 아니다. 국민적 단합도 없이 사분오열하는 국론으로 어림없다. 세계 11등 하는 경제력으로는 어설프게 일본과 같은 대접을 요구하고 덤벼들다 보면 미·중·일의 동네북이 된다. 일본처럼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지면 중국도 함부로 못한다.
 
한국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중 관계를 보면 지금 같은 사드 보복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판이다. ‘극일초중(克日超中)’ 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으로, 중국이 한국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당당하다. 중국이 사드 제재 끝까지 가더라도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한 한국의 메모리반도체는 제재 못한다. 이런 게 중국이 찌르는 창(槍)을 막아낼 방패다. 한국 와서는 큰소리 치지만 정작 중국 가서는 ‘사드 보복’이라는 말도 제대로 못 꺼낸 이빨 빠진 사자에 기댄 해법은 혹시나가 역시나로 허망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