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하종대의 모바일 칼럼]북한인들의 유별난 자존심

바람아님 2017. 6. 2. 14:42
동아일보 2017.06.01. 03:04


김일성종합대 강의실
기숙사 내부
기숙사 로비
기숙사 목욕탕
기숙사 화장실
기숙사 내부
기숙사 내 건식사우나
피트니스 센터
피트니스센터 탈의실
활주로 쪽에서 본 평양순안공항
순안공항 출국장
순안공항 비행기 탑승 장면
면세점을 북한에서는 무관세상점이라고 부른다.
순안공항의 주기장과 활주로

세계 200여 국가 사람들 중 한국인만큼 자존심이 센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은 남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북한 당국이 외국인에게 자신들의 최고급 시설만을 보여주고 선전하는 것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2011년 말 김정은 집권 이후엔 북한의 이런 집착이 더욱 심해졌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외국인 친구가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20여장 보내왔다. 김일성종합대 기숙사와 새로 단장한 평양 순안공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기숙사 내부 모습은 남쪽 대학의 여느 기숙사보다 멋지다. 2인1실의 방에는 가지런한 침대에 TV도 있다. 창문엔 정서 함양을 위한 건지 창문걸이 꽃도 걸려 있다. 기숙사 홀이며 피트니스센터, 목욕탕도 고급스럽다.

하지만 어디서도 단 한 번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책상엔 단 한 권의 책도 꽂혀 있지 않다. 목욕탕 물은 가득 받아놨지만 욕탕에 비누나 샴푸도 없다. 변기 옆엔 화장지도 없다. 피트니스센터 역시 단 한 번도 사용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선전용 시설이라는 얘기다.


탈북자에게 물어보니 외국인 전용이란다. 하지만 김일성종합대에서 직접 유학한 중국인에게 물으니 이런 시설은 일반 유학생에겐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이 정중하게 예우해야 할 극소수의 외국인 학생에게만 제공된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북한의 선전물을 뜯어보면서 진실 캐기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선전시설을 일부러 보여주고 사진까지 찍게 해줬는데 역효과가 나고 있으니 말이다.


2015년 7월 새로 지은 평양 순안공항 건물은 사진으로 보면 정말 산뜻하고 깔끔하다. 바닥은 얼마나 깨끗한지 ‘무관세 상점(면세점)’이라는 글자가 바닥에 그대로 비쳐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탑승게이트나 비행기 주기장도 정돈이 잘 돼 있다.

하지만 활주로엔 비행기가 뜨고 내린 흔적이 거의 없다. 개장한 지 2년이 다 됐지만 활주로에서 비행기 바퀴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멀리 5대의 여객기 및 화물기가 보이지만 승객이 이용 중인 비행기는 단 한 대 뿐이다. 공항에 출국 수속을 밟는 사람도 20~30명에 불과하다. 공항이 큰 것도 아니지만 시설에 비해 이용자가 너무 적다. 남한이라면 적자로 인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외국에 나와서도 절대로 기죽는 소리는 안 한다. 2003년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일이다. 베이징(北京) 어언(語言·언어)대에서 중국문학을 연구하던 북한의 석사생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한 그는 자기가 저녁 값을 계산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한달 용돈이 300위안(당시 약 4만 원 정도·이것도 북한이 아닌 중국 정부가 제공한다고 들었다.)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나로서는 160위안이나 되는 식사 값을 그 친구에서 부담하게 할 수는 없었다. 말리고 말려 내가 겨우 계산했지만 ‘3번은 사양해야 진짜 사양’이라는 말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그는 “북조선 동포 2인과 남조선 동포 1인이 함께 먹었으니 우리가 계산하는 게 맞다”고 우겼다.


자존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것은 사회지도층이나 엘리트 계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벌목공이나 건설노동자도 마찬가지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숨진 최덕근 영사 살해사건을 취재할 때다. 시내 한적한 교외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3명의 꾀죄죄한 모습을 본 나는 충격을 받았다. 러닝셔츠는 마치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성들이 걸치는 망사형 덧옷처럼 얼기설기 짠 것이었고 바지는 60년대 한국의 학생체육복 같았다. 부엌엔 양배추 반쪽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그들은 한사코 아무 부러움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쪽의 동포가 주는 선의의 30달러도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다.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주고는 도망치듯 나오는 데 억지로 받았다는 태도를 보였던 그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하나도 모른다는 최덕근 영사 살해사건에 대해 함구령이 내렸다는 말부터 자신들이 아는 내용은 죄다 얘기해줬다.(자본주의의 돈은 40년 사회주의 세뇌도 뚫는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나라가 북한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도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과 패권을 다투지 않지만 북한은 걸핏하면 미국과 한판 뜨자고 한다. 하지만 하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남에게 지기 싫어 잘 보이고자 하는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존감이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도 자존감이 높으면 아무런 굴욕감 없이 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나 동포 모두 너무 자존심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