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신수진의 사진 읽기] [10] 눈의 한계를 뛰어넘다, 시간의 틈새를 메우다

바람아님 2013. 9. 22. 10:05

(출처-조선일보 2013. 9. 22.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사진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여주는 도구였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진에 주목하는 것의 의미는 훨씬 축소됐을 것이다. 사진 발명 초기부터 사진 기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을 추구해왔고, 그 결과 사진은 인간의 눈을 변화시켜 왔다. 눈은 뛰어난 감각 기관이지만 한계를 갖고 있다. 아주 작거나 거대한 것, 매우 느리거나 빠른 것처럼 눈이 볼 수 없는 대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였다.

이드위드 머이브리지, 생물의 운동기능, Plate 167(부분), 1887

이드위드 머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1830~1904)는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순간을 잡아내기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는 1880년대부터 생명체들의 '동작'을 찍기 시작했다. 말이나 사람의 동작을 정교하게 촬영하기 위해선 대략 1000분의 1초 이하의 짧은 순간을 찍을 수 있어야 하는데, 유리 원판을 사용하는 '콜로디온 습판'이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적어도 10초 이상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후원자들을 설득해 비용을 마련하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셔터와 감광유제 등의 기술적 한계를 개선했다. 그리고 1887년 2만장이 넘는 남성, 여성, 어린이, 조류를 포함한 동물의 동작 사진을 담은 '생물의 운동기능(Animal Locomotion)'이라는 전설적 업적을 출간한다. 그 안에는 인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간의 틈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후 마르셀 뒤샹,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영화 매트릭스의 동작 묘사에서도 그의 시각적 선구성은 확인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인식을 확장시켜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시도가 지닌 역사적 의의는 처음 이 사진을 본 사람들과 13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사진을 보는 우리의 반응 차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누구도 이 장면이 충격적이거나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간의 틈새를 익히 보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만큼 우리의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좋은 작품은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