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0.12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 완다 율츠, 나+고양이, 1932
사진이 발명된 후 적어도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술은 만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사진이라는 신기술을 예술적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이들은 우선 기술을 장인의 수준으로 온전히 습득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야 특출한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사진에 자신만의 표현방식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단계, 즉 예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이 당대에 그 과정을 모두 이루진 못하였지만, 세대를 이어 축적한 기술을 종국에는 예술로 승화시킨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 미래주의에 동참했던 완다 율츠(Wanda Wulz·1903~1984)는 가업으로 사진 스튜디오를 이어받았다. 그의 할아버지 주세페 율츠는 1868년에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솜씨는 고객들을 만족시켰고 자연히 그의 스튜디오는 잘 자리 잡았다. 그는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였고, 그의 아들은 다시 어린 딸들을 일찌감치 모델과 조수로 훈련시켰다. 자매가 성장하여 스튜디오 운영을 물려받은 후, 특히 완다는 아버지의 장인적 기술을 바탕으로 그 집안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전통적인 인물사진에 만족하지 않고 한 장의 사진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해석과 상상을 보여주기 위해 암실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해내는 실험에 몰두한다. 고양이와 자신의 얼굴을 절묘하게 합성한 이 작품은 당시 아방가르드를 꿈꾸던 동료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눈의 위치와 얼굴의 크기를 딱 맞추어서 두 장의 사진을 중첩시킴으로써 그녀는 잠재의식으로부터 끌어올려진 초현실적인 조합을 만들어냈다. 완벽한 기술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였음은 물론이고, 세대를 거듭한 기술의 축적이 역사에 남을 예술 작품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다른 관련기사)
그들의 '파격'이 있었다 사진은 '예술'이 되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2/20090922002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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