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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월급쟁이 여행중독자의 가성비 여행법

바람아님 2017. 8. 9. 10:49
중앙일보 2017.08.08. 02:41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휴가는 가지 못했지만 지난 휴가를 되새기며 지낸다. 나는 여행 갈 때 까짓것 한두 푼에 연연한다. 4인 가족 가장인 월급쟁이 여행중독자의 숙명이다. 그런 주제에 꿈은 크다. 몇 년 전에는 8월 호주 여행을 꿈꿨다. 혹등고래가 남극을 떠나 호주 퀸즐랜드 해안으로 회유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입시지옥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고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선 비행기값이 부담이었다. 고민하던 중 경제 기사에서 유명 저가항공사가 한국 취항 예정이라는 뉴스를 봤다. 바로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프로모션 e메일 구독신청을 했다. 취항 기념 초특가 행사 메일이 오자마자 숨도 안 쉬고 발권했다. 다음 해 8월 초 호주 왕복 티켓이 세금 포함, 1인당 45만원이었다. 직항이 아니라 비행시간도 길고 좌석도 좁은 건 감수해야지. 그런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비즈니스석이 출발 직전까지 완판되지 않은 경우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저렴하게 파는 것이다. 8월은 호주의 겨울이라 성수기가 아니니 가능성 있다고 보고 옵션을 구매했다. 작전 성공. 누워서 갔다.

도착 후에는 캠핑카 여행에 도전했다. 그것도 공짜로. 오히려 기름값 210불까지 받아가며 브리즈번에서 케언스까지 1800㎞를 여행했다. 호주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는 렌터카 회사들이 차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줄 자원자들을 구한다. 나라가 커서 원 웨이 렌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시 원래 위치로 차를 보내야 하는데, 기사 고용해서 보내면 인건비 들고 차 수송 차량 이용해도 돈이 드니까 차라리 일정 맞는 여행객들에게 수송을 맡기는 거다. 운 좋게 가장 크고 좋은 6인용 메르세데스 캠핑카를 잡았다.

거대한 캠핑카를 몰고 북동해안을 누비며 혹등고래를 본 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향해 달리는데 이 나라에서는 로드킬이 캥거루더라.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서방 잘 만난 줄 알라고 큰소리를 좀 과하게 쳤더니 돌아온 대답. 사업가 집안에 시집간 아내 친구도 휴가 중인데, 여행 며칠 전에 온가족이 1등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서 옆집 놀러가듯 뉴욕으로 갔고 공항에는 리무진과 기사가 대기 중이라신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임시직 렌터카 운송기사로 일하는 셈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그러하였다.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