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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한국엔 왜 '원자력 고민' 환경론자 없나

바람아님 2017. 9. 30. 09:11

(조선일보 2017.09.30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사람 한 명이 평생 쓸 에너지… 석탄은 3200t 필요하지만

우라늄은 골프공 크기면 되니 밀도 높은 에너지가 親환경

한 가지 기술에 올인 말고 모든 대안 고루 발전시켜야


한삼희 수석논설위원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지난 25일 울산, 28일 용인에서 열릴 예정이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토론회가 무산 또는 파행됐다. 

'건설 중단' 쪽에서 '건설 재개' 측 토론자로 예정됐던 에너지경제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 박사들에 대해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이 토론에 나오는 것은 (정부의) 중립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공론화는 전문가들이 시민참여단 500명에게 최고의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 후 그들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만일 '건설 중단' 측이 토론회에 내세울 유능한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다면 그건 전문가 사회의 여론 분포를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력 있는 전문가가 나오는 걸 막는 것은, 당신은 수준이 높으니 한 손 허리에 묶고 복싱하라는 거와 뭐가 다른가.


선진국에선 환경 전문가들이 친(親)원전인 경우가 꽤 있다.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지구를 돌보지 않으면 지구가 인간을 배척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게 된다'는 가이아 가설로

환경운동권에 유력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영국 학자다.

그는 2005년 인터뷰에서 "환경운동 하는 친구들에게 간청한다. 제발 외고집으로 원자력을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

제임스 핸슨, 케리 이매뉴얼, 켄 칼데이라, 톰 위글리 등 기후과학자 네 명은 2015년 12월 파리기후회의 때

"원자력을 대안(代案)에서 제외하는 것은 인류의 중요한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방법 동원하기 전략(all of the above approach)'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15개국 생태학자 75명은 2015년 6월 '환경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밀도 높은 에너지라야

최소의 환경 파괴로 대량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며 원자력을 지지했다.

선진국 시민 한 명이 평생 쓸 에너지를 공급하려면 압축천연가스는 2만L 용량 탱커트럭 56대분이,

석탄은 코끼리 800마리 무게인 3200t이 필요하다.

니켈 배터리도 163층 부르즈칼리파 같은 빌딩 16개의 엘리베이터 공간을 채울 만큼 소요된다.

반면 원자력 에너지는 골프공 크기(780g) 우라늄이면 된다는 것이다.

'밀도가 곧 그린(Density is Green)'이라는 에코 모더니스트들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기후 문제가 절박하다고 해온 국내 환경운동 진영에서 기후변화의 유력한 대응 수단인 원자력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한 마디도 안 나오는 것은 이해 못 하겠다. 기후변화가 절박하다는 말이 실제 생각과 다른 말이거나,

원전을 옹호하는 말은 꺼낼 수 없는 그들 내부의 유연성 없는 분위기 탓 아닌가.


솔직히 신재생과 원자력 가운데 궁극적으로 뭐가 맞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신고리 5·6호기만큼 에너지를 공급하려면 태양광 지붕 529만 개가 필요하다. 태양광·풍력이 획기적 기술 발전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은 초기에 빠르게 발전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하는 'S자 커브'를 그리는 수가 많다.

원자력 역시 10년, 20년 뒤 모듈원전, 고속증식로 같은 기술로 안전성과 폐기물 한계를 극복하게 될지 모른다.

반대로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에너지 선택은 어떤 방향을 잡든 겁나는 선택이다.

전 세계 대학과 기업 연구실에서 무슨 기술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한국이 놀랄 만한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그걸 뛰어넘는 대안 기술이 나오면 우리 건 버려야 한다.

기술 발전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싸여 있다.

정부가 무슨 근거와 확신을 갖고 어떤 기술에 올인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가.

더구나 원자력은 우리가 수십 년 축적으로 세계적 수준에 오른 기술이다.

무슨 직관과 확신으로 그걸 포기하려 하나. 우

리가 택할 길은 신재생은 신재생대로, 원자력은 원자력대로 문을 닫아걸지 말고 적절한 배합으로 함께 살려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