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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임정·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바람아님 2017. 10. 9. 08:10
[중앙선데이] 입력 2017.10.08 00:02

12일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이태진·황태연·서영희 교수 토론
일제에 의한 왜곡 넘어 부활할 때

[특별대담] 1897~1910 잊혀진 제국, 영토 빼앗겼지만 주권 투쟁 계속
오는 12일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 대한제국을 연구해 온 3명의 전문가가 ‘왜곡된 대한제국, 부활하는 대한제국’을 주제로 대담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황태연 동국대 교수,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황 교수가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는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고, 곧바로 토론이 이어졌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 창건돼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패망할 때까지 12년10개월17일 동안 존속했다. 대한제국은 우리 민족 최초의 근대국가로서 기념할 만한 많은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기념은커녕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로 줄곧 무시되며 국가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았다.
 
대한제국 자체가 워낙 폄하되다 보니 그 시기를 연구하는 학자도 많지 않다. 이번 토론에 참여한 세 전문가는 대한제국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왔다. 대한제국 패망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제에 의해 집중적으로 자행된 우리 근대사의 왜곡은 광복이 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략 2000년 무렵 새로운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태진 교수가 2000년에 펴낸 『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은 새로운 분기점을 연 책으로 평가받는다. 서영희 교수는 대한제국 정치사를 다룬 연구로 첫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이 2003년 『대한제국 정치사 연구』(서울대 출판부)로 출간된 이후에도 대한제국을 본격적으로 다룬 박사 논문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다시 잊히던 대한제국이 120주년이 되는 올해 들어 크게 부각됐다. 황태연 교수가 잇따라 세 권의 역작을 펴내면서다. 『갑오왜란과 아관망명』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이상 청계)이 그것이다.
 
이 교수는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출간할 당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대한제국의 역사와 패망이 너무 딱해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한제국에 대한 우리 한국인들의 이해와 인식이 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일제가 심어 놓은 왜곡의 덫에 단단히 걸려들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후손들의 안이함과 무책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착잡한 심경 토로 이후 17년이 흐른 오늘의 상황도 크게 개선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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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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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는 발제에서 “대한제국은 항일투쟁을 위한 국내망명 비상국가였다”고 정의했다. 대한제국을 평가할 때 근대화의 성과를 중심에 놓았던 기존의 시각과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침략전쟁을 은폐하고 ‘갑오경장(갑오개혁)’을 중시하는 기존의 시각 자체가 일제에 의한 왜곡의 출발이었음을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대한제국을 ‘전근대적이고 복고적인 황제전제국가’로 폄하해 온 점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그 같은 인식에는 군주 없는 ‘민주(인민) 공화국’만을 근대국가로 보는 잘못된 근대관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왕이나 황제가 존재하는 것과 근대화는 서로 모순된 관계가 아님에도 대한제국의 경우에만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진국에서 ‘왕을 중심에 둔 근대화’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얘기다. 천황이 있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한제국과 고종을 평가할 때 늘 따라다니는 것이 ‘망국책임론’이다.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대한제국은 결코 무능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나라가 아니었다”면서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는 대한제국이 ‘미개한’ ‘야만’의 나라라는 전제 아래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 정당화를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을 ‘무능의 대명사’로 왜곡시켜 놓았다. 일본의 침략주의는 대한제국이 국가나 황제 차원에서 진행한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대한제국에 대한 비난과 매도를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제국은 망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10년의 강제병합 자체도 고종과 순종의 서명이 없거나 위조한 것임이 이미 밝혀졌다”며 “대한제국은 영토를 빼앗겼지만 국권과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결국 망한 것이 아니며 망국의 책임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대한제국의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못 보게 만드는 요인은 소위 개화파 위주로 연구해 온 근대사의 프레임 때문”이라며 “고종과 대한제국의 실패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