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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서래섬]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아님 2013. 10. 6. 08:05

 

[반포 서래섬]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10월 3일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다. 목적도 없이 어딘가로 훌쩍 떠니고 싶은 그런 날씨다.

얼핏 지난달 있었던 봉평 "효석 문화제"가 생각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려 반포 "서래섬"에

도착했다. 온천지가 눈에 덮힌듯 하얗다.

봄에는 노란 유체꽃으로 갈아 입더니  이 가을엔 하얀 눈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메밀밭을 거닐며 학창시절 탐독했던 "메밀꽃 필무렵"을 떠 올리는듯하다.

 

"  가진 것이라고는 얼굴에 얽은 마마 자국과 나귀 한 필뿐인 허생원.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탓에 스물 아홉 해를 사랑 한번 나누어 본 적 없는 장돌뱅이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메밀꽃이 하얗게 부서지는 어느 여름날,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던 남녀의 하룻밤은 말 그대로 꿈같이 지나가고......"

<메밀꽃 필무렵 중에서..>

 

가산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조선지광'지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효석의 문학은 시적 서정을 소설의 세계로 승화함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하는 그의 문체는 우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돈', '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性)의 탐색을 통해 그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순결한 세계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과 결합시킨 시적 서정소설로 새로이 개척해냈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당시 이태준, 박태원 등과 함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던 이효석은 그의 황금

같은 문학적 결실을 다 누려보지도 못한 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도심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봉평마을의 메밀밭을 걸을수 있다니 꿈만 같다. 멀리 북한산과 남산이 보이고

사방이 아파트로 꽉 막혀 있는 이곳... 문득 옆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한강물이 친밀감을 더해준다.

저물속에는 봉평마을 메밀밭옆을 흐르던 물이 함께 섞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에도 하얗게 시골길을 비춰주던 메밀꽃

 

얼핏 보면 팝콘을 풀잎끝에 매달아 놓은듯 하지만

 

가까이 얼굴을 드리밀면 아기자기한 꽃잎과 형형색색의 꽃술이 있다

 

 

 

멀리 북한산과 남산,그리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갇쳐 있지만...

 

메밀밭속을 걸을때는 그저 먼 옛날 언덕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시골길옆 메밀밭만 보인다.

 

 

 

 

 

 

 

 

 

추억이 없는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흔히 볼수 없는 꽃이라 좋아하고

 

시골 외할머니댁에 온것처럼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

 

 

 

 

 

그러나 나이는 조금 들었어도 어린날 추억이 새록새록 하고....

 

메밀밭 사잇길을 걸어 보고...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듣고 살아도 여고시절 가졌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편문학을 읽느라 밤을 꼬박새우고 주인공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아련한 그리움도 만들었었는데...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데이트를 보며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학창시절 소녀가 되고 싶은 엄마손에 이끌려 나온 꼬마숙녀 그래도 이숙녀는 먼 훗날

떠올릴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