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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의 '신시대' 선언은 덩샤오핑 시대에 작별 고한 것

바람아님 2017. 11. 1. 07:34

중앙일보 2017.10.31. 01:02

 

덩샤오핑 제시한 중등 국가 목표 시진핑이 세계 선두 국가로 수정
중국 사회가 부닥친 주요 모순도 빈곤 타파에서 격차 해소로 바꿔
미·중 갈등을 성장통으로 인식해 감내하고 이겨내는 전략 취할 듯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새롭게 시작하는 자신의 집권 2기를 ‘신시대’라고 규정했다. 그가 말하는 신시대는 무언가.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가. 한·중 관계 또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난 2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정승 전 주중 대사의 사회로 열린 본지 중국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포럼에서 국내 중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다.

‘시기’와 ‘시대’, 이 두 단어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시기가 수년 정도의 한정된 기간을 말한다면 시대는 수십 년에 걸치는 보다 긴 세월을 의미한다. 시진핑은 집권 2기 출범을 ‘신시기’가 아닌 ‘신시대’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통치이념이 펼쳐질 시간을 길게 잡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여기에 과거 시대와 결별한다는 뜻이 담겼다는 점이다. 과거란 언제를 말하나. 덩샤오핑 시대를 가리킨다. 어떻게 달라지나. 우선 중국이 나아가야 할 목표가 바뀌었다. 덩샤오핑은 중국 건국 100주년에 즈음한 21세기 중엽까지 중국을 중등 수준의 국가로 발전시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중국 꿈 로드맵
당시 중국 형편은 먹고사는 데 걱정 없는 온포(溫飽)사회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때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온포를 넘어 약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소강(小康)사회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진핑은 이에 목표를 수정했다. 중등 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선진 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이다.

중국 사회가 맞닥뜨린 모순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했다. 덩은 ‘인민의 날로 증가하는 물질적 수요와 낙후된 생산력 간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고픈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선 생산력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못살 때 이야기다.

시진핑은 새로운 모순론을 제기했다. 현재 중국 사회는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 불충분 간의 모순’을 안고 있다는 주장이다. 절대적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빈부격차 해소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중국 인민은 이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삶의 질이 문제란 것이다. 이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불충분이 주요 모순으로 떠올랐다는 해석이다. 시진핑 입장에선 덩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목표와 모순을 갖게 됐다. 이를 풀려면 새로운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시진핑 사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강준영 외국어대 교수는 시진핑이 당헌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지도이념을 넣은 건 덩샤오핑 시대와의 작별을 고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덩의 시대와 구분하고자 ‘신시대’라는 용어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시진핑 사상을 당헌에 넣어야 했을까. 한 지도자의 국정철학을 당헌에 넣는 건 보통 임기가 끝난 뒤 평가받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말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당내 합의가 이뤄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 내에 현재 중국 공산당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자면 시진핑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합의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도 이번 당대회에서 20년 이상 된 관례가 깨지며 후계자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지 않은 것 역시 흔들림 없는 시진핑 시대의 전개를 위한 포석으로 진단했다.


그렇다면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국꿈은 세계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 중국이 그리는 중국식 세계 질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보다는 중국 전통의 천하주의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인갑 서강대 교수는 전망했다. 그런 중국이 21세기 중엽에 이르러 과연 미국을 능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우선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드는 강군몽(强軍夢)이 계획만큼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적했다. 시진핑이 이번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30만 감군 계획의 진행 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건 군 개혁이 순조롭지 않다는 방증이란 해석이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도 시진핑이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사업도 중국의 과잉 생산능력을 바깥으로 밀어내기에 그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팽창을 상징하던 철도 건설을 21세기 중국이 답습하고 있는 모양새로 관련 국가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꿈 실현에 대한 중국의 강한 의지를 결코 가벼이 봐선 안 될 것이라고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말했다. 중국이 과거 헨리 키신저와 빅딜에 동의하던 당시의 약체 중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국꿈이란 결국은 미국을 넘어서는 것이다. 미국과의 갈등은 중국이 회피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며 중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성장통’으로, 이를 감내하고 이겨내는 게 중국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인식을 중국이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중 틈바구니에 낀 우리로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정상기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우리 국론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공산당 일당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국과 맞서려면 우리 스스로의 의견 통일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주 국가인 우리로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게 당연하지만 적어도 중국과 밀고 당기기를 제대로 하려면 다수 의견을 전제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야 중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중국이 역사의 족쇄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우리 대중 정책의 기본을 짤 때는 중국의 전략적 틀을 그리는 핵심 인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제적으론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박근태 CJ 대한통운 대표는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빼고는 우리가 중국에 이기는 게 거의 없다”며 중국에서 사업할 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해 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문 한양대 교수는 “실용성·편의성·시의성 등 중국 문화의 3박자 특징을 담은 제품 개발이 시급하다”고 역설했고, 임대근 외국어대 교수는 “중국인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대거 찾으며 한·중 관계가 회복될 때 양국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돌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