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재미있는 과학] 가로세로 합체한 나무, 콘크리트보다 '튼튼'

바람아님 2017. 12. 5. 18:48

(조선일보 2016.08.30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초고층 목조 빌딩의 원리] 


집성재 수평·수직으로 붙인 'CLT'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고 콘크리트보다 무거운 무게 잘 지탱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고 공사 기간 단축시키는 등 장점 많아
21세기 건축, '나무의 시대' 될 수도


지난달 27일 경기도 수원에 4층 규모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연구동 건물이 들어섰어요.

그런데 이 건물은 독특하게도 건물 전체를 나무로 만들었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1~2층 목조 주택이나 건물 일부를 나무로 짓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나무로 만든 건 근래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요.


흔히 건축사에서는 18세기를 '벽돌의 시대', 19세기는 '강철의 시대',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로 불러요.

지금도 대부분의 고층 건물은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물과 섞은 콘크리트로 짓고 있지요.

그런데 21세기 건축은 '나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답니다.

도심에 지어지는 초고층 빌딩들도 목재로 짓게 될 것이라는 말이에요.


◇온실가스·공사 기간 줄일 수 있어요


나무가 고층 빌딩의 소재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콘크리트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소재라는 강점이 있어요. 나무는 살아있는 동안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체내에 저장하고 맑은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요. 나무가 죽더라도 몸에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답니다. 나무로 만든 목재 1㎥당 이산화탄소 1t이 저장되어 있다고 해요.


그래서 목재를 이용하면 콘크리트를 이용할 때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가령 20층 높이의 건물을 콘크리트로 지으면 약 1200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합니다.

반면 목재로 지으면 이산화탄소 3100t을 목재 안에 가두어 둘 수 있어요.


초고층 목재 건물의 재료 CLT 설명도

초고층 목재 건물의 재료 CLT 설명도/ ▲ 그래픽=안병현


목재로 고층 빌딩을 지으면 공사 기간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으면 강철로 된 H자 모양의 철제 빔을 기둥으로 삼고 그 주변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고정하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이용합니다. 그래서 콘크리트를 단단하게 굳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요.


반면 목재로 고층 건물을 지으면 목재로 벽을 쌓아 층을 올리는 '벽식구조'를 이용해 손쉽게 건물을 세울 수 있어요.

실제로 2009년 영국 런던에 지어진 29m 높이의 9층짜리 목조 아파트 '슈타트하우스'는 불과 28일 만에 건물 골격을 세웠고,

2012년 오스트리아에 건설된 높이 25m의 목조 빌딩도 8일 만에 완성되었답니다.


◇뭉치면 세지고 흩어지면 부러진다


최근에 지어진 목조 건물은 옛날에 지어진 목조 건물과 큰 차이가 있어요. 베어낸 나무껍질만 벗긴 목재가 아닌,

특수 제작된 목재를 사용한다는 것이죠. 바로 '직교적층목재(CLT)'입니다.


CLT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나무껍질만 벗겨 목재로 쓰게 되면 건조를 잘 시켜도 목재가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문제가 있어요.

해마다 줄기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또 위쪽으로 조금씩 자라면서 부피가 커지는 나무의 특성 때문이죠.

나뭇결이 세로 방향으로만 자라다 보니 나뭇결 사이의 결합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어요.

태권도 시범단이 송판을 격파할 때 나뭇결 방향으로 내리치는 것도 목재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에요.


하지만 CLT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우선 나무를 나뭇결 방향으로 잘라붙인 '집성재'라는 특수 목재를 만들어요.

그다음 집성재를 수직으로 교차시켜 붙입니다. 집성재를 한 번은 수평으로, 그 위는 수직으로 교차시켜 붙인 것이 바로 CLT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CLT는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는 튼튼한 건축 재료가 되어요. 심지어 콘크리트보다도 튼튼하답니다.


실제로 CLT와 콘크리트 중 어떤 것이 무거운 무게를 더 잘 견디는지 실험해보았어요.

그 결과 같은 단위면적을 기준으로 했을 때 콘크리트는 29t의 무게에 부서졌지만, 콘크리트보다 3분의 1 정도 가벼운 CLT는

43t까지 견뎌낼 수 있었어요. 예상과 달리 나무로 된 고층 빌딩이 오히려 더 많은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진이 일어나도 목조 건물이 더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화재에 약한 약점도 보완


그동안 목조 건물은 화재에 약하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어요. 하지만 CLT는 이런 문제도 해결해주었어요.

집성재를 여러 번 교차시켜 붙인 CLT는 무거운 무게를 잘 견디는 동시에 불이 잘 붙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죠.

마치 성냥개비 하나에는 불이 쉽게 붙지만, 굵은 통나무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CLT로 지은 목조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보다 화재에 더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국립산림과학원 재료공학과 이상준 박사는 "콘크리트 건물은 화재가 나면 건물의 뼈대인 철근이 순식간에 휘어질 수 있지만,

나무는 다 타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며 "큰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오히려 목재로 된 건물이 사람들에게 대피할 시간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해요.

전 세계에 초고층 목조 건물이 늘어나는 이유는 이렇듯 그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까지 10층 높이의 목조 건물을 짓는 것을 목표로 여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