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48] 거꾸로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

바람아님 2017. 12. 25. 07:11

(조선일보 2017.12.25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크리스마스트리를 거꾸로 매달다니!  크리스마스트리 하면 으레 꼭짓점이 하늘을 향한 삼각형에 익숙하니 의아하게

들릴 만도 하다. 그러나 2014년 12월 프랑스 파리의 라파예트 백화점에는 높이 25m나 되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높다란 천창(天窓)에 거꾸로 설치됐다.

무게가 4t이나 되는 트리를 둥근 돔 형태의 유리 천창에 매다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중 하나로 선정되며 큰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그래픽 아이덴티티 책임자인 프레데리크 루보(Louvau)는 "항상 똑같은 크리스마스트리에 식상한 사람들을 역발상으로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일 10만명 넘는 고객이 예년과 전혀 다른 트리를 보면서 일탈을 경험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를 거꾸로 매다는 풍습은 이미 서기 700년쯤부터 중부 유럽에서

시작됐다. 영국 태생으로 독일에서 선교 활동을 한 성(聖) 보니파시오의 영향으로

삼각형인 전나무를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그것을 거꾸로 매달면 역삼각형이 되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간주했다. 동유럽 여러 지역에서는 전나무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음식, 과일 등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특히 슬라브족이 그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다.

요즘 미국도 대형 마트에서 거꾸로 매다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트리를 거꾸로 설치하면 바닥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기나 애완동물들이 건드리기 어려우므로 파손이나

화재 위험이 줄어든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천장에 거꾸로 매다는 것은 단순한 역발상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이유 있는

전통의 산물이다.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e)의 이색 크리스마스트리, 높이: 25m, 무게: 4t,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