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07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선사시대 사람들 전쟁 나설 때 고인돌 크기로 상대 힘 파악
바벨탑·피라미드·콜로세움은 생존 전략이자 과시욕의 산물
선진국 인정받고 싶은 나라들, 오늘날도 앞다퉈 초고층 지어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168층 828m 높이의 '부르즈 칼리파'이다.
초고층이 되면 엘리베이터 면적이 늘어나서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도 이미 100층 넘는 건물이 지어졌고, 또 하나가 건축 중이다.
초고층 건물의 역사는 바벨탑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모여 벽돌과 아스팔트를 이용해 하늘을 찌를 듯한 바벨탑을 쌓았다고 나온다.
학자들은 이 바벨탑이 지금 이라크에 있는 지구라트라고 말한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지어진 신전 건축이다.
당시엔 초고층이라 여겨질 이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고대의 왕들은 엄청난 노동력과 돈을 들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쓸데없이 높은 초고층 건물을 지을까?
그 답은 고인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은 두 개의 돌이 기둥처럼 서 있고 그 위에 더 큰 돌이 얹혀 있는 석기시대의
건축물이다. 고인돌은 문자 기록이 없던 선사시대의 유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건축 과정을 살펴보면 용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는 바퀴가 발명되기 전이었다.
'나무를 잘라서 무거운 돌을 그 위에 얹고 수십 명이 힘을 합쳐서 밀고 온다. 땅을 파고 상대적으로 작은 두 개의 돌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세운다. 세워진 두 개의 돌이 묻힐 정도로 완만한 흙 언덕을 만든다.
그 위로 다시 큰 돌을 통나무 위에 놓고 밀어서 언덕 꼭대기에 올린다. 흙 언덕을 파내서 고인돌을 완성한다.'
이 과정만 보더라도 고인돌 건축은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100명이 5개월 작업해야 할 규모의 고인돌이 있다고 치자. 어떤 부족이 전사 60명을 동원해 전쟁하러 왔다가
그 지역 고인돌의 규모를 보고 부족장의 세력을 가늠하게 된다. 자기 동네 고인돌보다 더 크면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이처럼 고인돌 같은 거석문화는 그것을 만든 우두머리가 지닌 권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러한 과시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런데 제대로 과시하려면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써야 한다.
고인돌이 과시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고인돌이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과시할 목적으로 동창회에 명품 백을 들고 간다. 명품 백이 '과시'가 되는 이유는 생활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필품은 과시가 될 수 없다.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가서는 과시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다이아몬드 반지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과시가 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건축하는 데 힘이 드는 모든 무겁고 높은 건축물들은 권력자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든 것들이다.
이집트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로마는 정복지마다 콜로세움을 지었다.
미국 역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짓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1991년 소련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을 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지었다.
이후 냉전시대가 도래하자 소련 사회주의보다 미국 자본주의가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쌍둥이 빌딩이나
시어스 타워 같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과시할 필요가 없다.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이 더는 필요 없어진 것이다.
현재 초고층 건물을 짓는 나라는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다. 석유를 팔아서 졸부가 된 두바이나,
자신이 미국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은 중국 정도이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100층 넘는 초고층 건물을 지은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자국의 국가 시스템이 중국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건축만큼 효과적인 광고는 없는 듯하다. 초고층 건물은 멀리서도 보이고 랜드마크가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노출되는 그 건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초고층 건물의 이미지는
디지털 정보로 재생산되고 퍼져 나간다. 역사를 살펴보면 피라미드부터 에펠탑을 거쳐 부르즈 칼리파까지 대표적인 도시에는
초고층 건물이 하나씩은 자리 잡았다.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직까지도 관광 수입과 도시 아이덴티티(identity)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면
초고층 건축물은 투자 대비 가장 효율적인 광고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생존을 위한 과시를 지속하는 한 초고층 건축물도 계속해서 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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