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1.29 정경원 세종대학교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54㎞ 떨어진 고속도로 근처에 징기스칸 기념관이 있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읜 징기스칸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업적을 기리려는 것이다.
2006년 몽골공화국 창설 800주년에 착공하여 2년 만에 완성된 기념관은 모스크바 미술대학 연구소 출신
몽골인 조각가 에데네빌레그(D. Erdenebileg)와 건축가 엔크자갈(J. Enkhjargal)의 공동 작품이다.
징기스칸 기념관, 높이:50m, 건설비:410만 달러(약 44억원),
개관:2008년.
10대 시절 징기스칸이 황금 말채찍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에
건립된 기념관은 2단의 원통형 전시관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기마상을
세운 구조다. 기념관 아래 단 외벽의 36개 반(半)원통형 기둥은
징기스칸 이후 몽골을 통치한 서른여섯 명의 칸(왕)들을 상징한다.
내부에는 유품들의 전시 공간과 기마상 중간 부분의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과 승강기가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몽골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테마파크가 조성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 손에 황금 말채찍을 든 징기스칸의 기마상은
'정적(靜的)'이다. 주인공을 태운 말의 네 발이 모두 지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250톤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려니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기마상 디자인의 불문율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마상의 주인공이 전사했을 경우에는 말이 앞 두 다리를 번쩍 들게
하여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나 후유증으로 사망하면 한쪽 다리를 들게 하지만,
지병이나 노환으로 사망했을 때는 네 발을 모두 지면에 붙이게 디자인한다.
젊은 시절부터 기마부대를 이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징기스칸은 몽골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후에도
원정을 지속했지만 67세의 나이에 병사(病死)했으므로 그의 기마상은 불문율에 따라 정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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